


정 치
보수와 진보 그리고 민주주의
. 전문 지식들이 각 분야에서 제 기능을 다할 때, 사회는 구성원 전체에게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제공한다. 하지만 풍요로움과 편리함만으로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 인간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 타인을 만나고, 위로 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해서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말하고 타인이 말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서로 기본적인 공통 분모를 공유해야 한다. 개인적이고, 깊은 전문 지식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최소한의 공통 분모로서 교양을 공유해야만 한다. 교양은 인문학적 배경을 의미하며 구체적으로는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의미한다.
. 세상의 모든 사람은 자신이 그 사실을 이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건간에 이미 보수이거나 진보이다.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편협한 이분법적 구도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보는 방식이며, 개인의 세계관의 표현이다. 자신은 보수도 진보도 아니라는 말은, 자신은 어떠한 세계관도 갖지 않는다는 말처럼 불가능한 이야기다.
. 정치란 경제 체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에 대한 논의이다. 경제 체제 중 무엇을 우리가 사는 세계에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정치의 본질이라 하겠다.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시장의 자유를 주장하는 입장으로 우리는이를 정치적 보수라 부른다. 다른 하나는 정부의 개입을 주장하는 입장으로 우리는이를 정치적 진보라 부른다.
보수와 진보의 이론적 구분
. 자신을 보수 혹은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답에는 공통점이 있다.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각각 안정과 변화 추구의 의미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너무 막연하고 주관적인 해석이다.
. 세계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타인에 대한 평가를 다르게 한다. 세계가 그나마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회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의 원인이 개인에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세계가 문제가 많고, 불안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회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의 원인을 개인이 아닌 사회에서 찾는다. 왜냐하면 사회가 이미 문제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정상적인 개인이라도 그 부조리한 상황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 세계관의 차이는 개별 사건에 대한 상반된 평가로 이어진다. 이에 대해서 어떤 견해가 옳고 그런지 판단할 수는 없다. 서로 다른 시각은 존재하지만, 틀린 시각이란 없다.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타인의 세계관을 비판하는 것은 무의미하지는 않을지라도 매우 소모적이다.
. 정부의 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자유를 중시하는 신자유주의가 그나마 최선의 체제이므로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은,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입장을 보수 혹은 우파라고 한다. 보수란 안정 지향적인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유지하려는 입장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새로운 것과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지금의 신자유주의를 옹호한다면 보수의 속한다고 하겠다. 예를 들어 혁신적인 인물로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각인된 스티브 잡스는 아무리 변화와 혁신을 추구했다 할지라도, 정치적 입장에서는 보수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저항하는게 아니라 현재의 미국식 자본주의 사회를 최대한 이용하고 활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을 진보 혹은 좌파라고 한다. 이들은 시장의 자유를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의 입장을 비판하고, 정부의 개입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그런데 정부의 개입을 추구하는 입장은 매우 다양하다. 대표적으로는 후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있다. 사회민주주의도 여기에 포함되고, 아예 산업화나 국가 체제를 비판하는 환경주의자나 무정부 주의자들도 신자유주의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진보에 포함된다. 이와 같이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는 느슨한 공통점으로 인해 진보는 전혀 다른 체재들을 동시에 지칭하게 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다만 오늘날 일반적으로 진보라 할 때 그것이 지칭하는 것은 후기 자본주의나 사회 민주주의다.
. 후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동시에 진보로 분류된다는 언어적 문제는 한국 근,현대의 비극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등 후기 자본주의자들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한다는 이유만으로 공산주의자나 빨갱이로 불리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순수하게 언어적 혼란 때문에 발생한 문제인 것으로만 보기는 힘들다. 후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구분이 의도적으로 은폐된 면이 없지 않다. 자신의 재산과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고 진자유주의를 지켜내고자 하는 것 같다. 그런 집단은 자신의 기득권을 이용해서, 역사적인 맥락에서 한국인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공산주의를 후기 자본주의와 함께 묶음으로써 대중이 후기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 보수는 신자유주의를 옹호하고,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며, 세금을 축소함으로써 복지를 축소하려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보수적 견해는 자본가, 기업이 지지한다.
반면 진보는 후기 자본주의나 사회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추구하며, 세금을 높임으로써 복지를 확대하려는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적 견해는 노동자, 농민, 서민 등이 지지한다.
. 보수와 진보의 선택은 어떤 입장이 옳고 또 다른 입장은 그르다고 단정할 수 없다. 보수와 진보의 선택 문제는 현재의 상황을 고려하여, 개인과 전체의 이익에 어느 쪽이 더 부합하는가를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문제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과 국면이 크게 변화된다면, 진보를 지지하던 사람도 보수를 지지할 수 있고, 반대로 보수를 지지하던 사람도 진보를 지지하게 될 수도 있다.
. 정치의 본질이 경제 체제를 선택하는 문제이며, 구체적으로는 나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선택하는 문재임을 이해한 뒤,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는 사람과 무엇이 정치의 본질인지 알지 못한 채, 자신이 알아들을 수 있는 한,두 개의 부수적인 측면만을 기준으로 정치적 선택을 하는 사람과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 전자의 사람은 집권하게 된 정치권력과 그가 펼쳐 나가는 정책에서 일관성을 보지만, 후자의 사람은 혼란을 느끼고, 정치인은 다 거짓말쟁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사람이 된다.
보수와 진보의 현실적 구분
. 경제 체제와 연계해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보수와 진보의 궁극적인 차이는 세금과 연결되어 있다. 보수는 세금을 낮추고 복지도 줄이려는 방향성을 갖는다. 반면 진보는 점진적으로 세금을 올리고 복지를 늘리려는 방향성을 갖는다. 현재 사회에서 주로 논쟁되는 체재는 신자유주의와 후기자본주의 그리고 사회 민주주의 정도이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GDP 대비 대략 20% ,40%, 60%대의 세율을 갖는다.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한국, 미국, 일본의 경우 25% 내외의 세율을 유지한다. 수정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영국, 프랑스, 독일의 경우에는 대략 40% 사회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스웨덴, 덴마크의 경우 50에서 60% 내외의 세율을 유지한다.
. 한국의 정당을 보수와 진보로 구분해 보면 한국당 민주당은 보수 정의당 진보당은 진보이다 정도를 주장하는 민주당은 현재 한국 땅에 맞서 진보적 입장과 중도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쨌거나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보수 정당이다 따라서 세계의 보편적인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통해 판단하자면 민주당은 엄밀히 말해 보수 정당이 위치에 서게 된다 한국이 전 세계에서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국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이 제일 정당이 된 제2정당이든 어쨌거나 누가 집권을 한다 해도 한국은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 세계적 관점에서의 일반적인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은 공화당과 민주당은 자본주의 체제를 지양하여 보수 보수적 입장을 갖고, 사회당, 노동당, 공산당은 사회주의 체제를 지향하여 진보 적 입장을 견지한다.
. 비리와 부페의 문제가 아니라, 이론적이고 이념적인 측면에서라면 선한 정당도 악한 정당도 없다. 각 정당은 우리 사회의 특정 계층의 입장을 대변할 뿐이다. 보수 정당들이 자본가와 기업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진보 정당들이 서민과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비난을 필요도 없다. 욕먹고 비난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정치인이나 정당이 아니라, 어떤 정당이 자신을 대변하는지 모르고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다
. 정당의 상징색에 대해 알아보면, 역사적 측면을 고려할 때, 세계적으로 자유주의는 파란색을 사회주의는 빨간색을 상징색으로 사용해 왔다. 그 기원은 프랑스 대혁명에 있다. 프랑스 국기인 삼색기가 파랑, 흰색, 빨강으로 나뉘어 있는 것도 이와 연결된다. 이 삼색기는 절대 왕정에 저항한 시민혁명의 정신을 표상하고 있다. 각각의 색깔은 자유, 평등, 우애를 상징한다. 즉 파랑은 자유, 흰색은 평등, 빨강은 우애인 것이다. 여기서 우애가 뭔가 싶을 수도 있는데, 예전에는 박애라고 번역했던 프레터니티를 말한다. 형제애, 연대 등의 의미를 갖는다. 이후 공산주의가 빨강을 상징색으로 선택하면서, 자연스럽게 자본주의는 자유를 상징하는 파랑을 선택하게 되었다. 색상에 의한 이념 표식은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 이러한 상징색이 정확하게 지켜지는 지역은 유럽이다. 영국의회는 보수당이 파란색을, 진보당이 빨간색을 당의 상징색으로 사용한다. 스웨덴과 핀란드, 노르웨이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도 국가마다의 특성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갖지만, 큰 틀에서 볼 때 자신들이 이념을 당의 상징색을 통해 정확히 드러낸다.
반면 한국, 미국, 일본 등의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정당의 상징색이 전통적인 맥락과는 무관하게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공화당은 빨간색, 민주당은 파란색을 상징적으로 사용한다. 이러한 도식은 2000년 이후에 등장한 것으로 사실 이렇게 나뉜 특별한 이유는 없다.
일본의 대표적인 보수 정당인 자유민주당은 오랜 기간 녹색을 상징 색으로 사용했다. 녹색은 전통적으로 환경과 생태를 강조하는 녹색당의 당색임에도 불구하고, 자민당이 녹색을 사용하는 것 역시 어떤 맥락도 없다. 그래서인지 2017년 이후부터 자민당은 미국 공화당처럼 자신들이 상징색으로 빨간색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30년 가까이 한나라당, 신한국당 등 보수 정당이 파란색을, 민주당이 초록색이나 노란색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2014년 이후 새누리당이 빨간색으로 민주당이 파란색으로 당색을 변경한 다음부터 현재까지 당의 상징색이 이어지고 있다.
. 객관적인 언론과 방송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허상에 가깝다. 객관적인 미디어는 없다. 이 사실을 전제하고 언론과 방송을 접해야 그나마 객관적인 사실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가 객관적으로 보도하지 못한다는 말의 의미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객관적 사실을 전달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객관적 사실에 의도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이다.
. 미디어가 객관성을 잃어버리고, 주관적으로 편향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단적으로 수익 구조 때문이다. 기업들로부터 광고 송출의 대가를 받아서, 수익을 창출함으로써 유지될 수 있다.
미디어가 판매 하는 것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다. 미디어의 고객도 당신이 아니다. 미디어가 판매하는 상품이 당신 바로 시청자이고,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은 기업이다. 기업은 시청률을 사고, 미디어는 시청자를 기업에 판매한다.
사업 유지를 위한 모든 수익이 기업에서 나오니 언론과 방송은 필연적으로 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특히 거대한 재벌 그룹은 언론사와 방송사의 가장 중요한 고객이다.
미디어는 객관적 사실 전달의 의무를 상실하고, 정부의 시장 개입에 반대함으로써 기업과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적 성향을 띠게 된다.
본질적으로 미디어를 흔드는 것은 정치권력이 아니라 기업이다. 반대로 미디어가 기업의 이익에 따라 정치 권력을 흔들려 한다.
. 한국 언론사의 경우, 정치 성향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보수 언론인 조선, 중앙, 동아의 언론사 점유율은 50%대, 발행 부수상으로는 70%대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점유율이 낮은 한겨레, 경향 등은 비교적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방송사의 경우 분명한 정치 성향을 갖는 것은 조선, 중앙, 동아를 기반으로 하는 종합 편성채널 정도다. 이 중 jtbc는 최근 다른 종편들과 달리 비교적 진보적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으나, 기업과 노동자의 이익 충돌에서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가라는 거시적 관점에 근거한다면, 보수적 성향으로 분류하는 것이 적합하다.
공중파 채널의 경우, 직접적으로 정치 성향을 밝히지 않으므로 방송의 전반적인 논조, 프로그램의 편성과 배치, 프로그램마다의 미세한 편집 방식을 통해 판단해야 한다. mbc는 일반적으로 오랜 시간 다른 공중파에 비해 진보적 성향을 띠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SBS는 상대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갖는다. 연애와 오락 중심의 방송으로 인식되는 sbs를 보수적 성향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세계관에서 찾을 수 있다. sbs가 연애와 오락 중심으로 방송을 편성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을 그나마 안정된 세계라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치적 성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지 않는 것, 정치적 사안의 심각성을 강조하지 않는 것은 중립이나 비정치적인 성향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에 구조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보수적 세계관이다. 날카로운 풍자와 시사가 배제된 예능은 대중의 말초적인 재미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실제의 현실에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정치 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 대형 미디어의 보수화와 재벌 기업 눈치 보기는 일면 정의롭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보수 성향의 언론과 방송이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대기업의 광고를 토대로 미디어가 대중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막대한 자본력을 토대로 복잡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엄선하고, 소자본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볼거리를 제공했다. 대중문화의 질적 향상에 미디어와 기업 간의 공생 구조가 기여했음은 분명하다.
. 일반적으로 경제 주체는 가계, 기업, 정부를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만으로는, 다양한 사회 현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앞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두 계급을 구분하였는데, 이 두 주체의 대립 관계로 경제 현상을 파악해야, 비로소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의 원인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의 주주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러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 갈등은 이론적 측면에서 해소되었다. 하지만 같은 주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수량에 따라 그 사람의 계급적 지위가 달라진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은 현실에서 두 집단의 형태로 드러난다. 기업과 노조다. 단어는 자본가와 노동자, 기업과 노조로 변해 왔다. 하지만 단어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노동자가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자본가로부터 임금을 받는다는 구조는 동일하다. 또 한 명의 개별 노동자는 한 명의 자본가보다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는 사실도 동일하다. 그런 까닭에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한다. 임금을 협상해야 하거나, 노동 시간과 노동 환경의 개선을 요구할 때, 힘을 모아 단체로 협상에 임하면, 개인으로 협상할 때보다 비교적 유리한 위치를 점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자본가와 이해관계가 대립될 때, 협상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실력 행사로서 파업을 한다. 파업은 노동자가 집단으로 노동을 거부하는 행위로, 자본가에게는 단기적 손실이 된다. 이에 따라 자본가는 파업으로 인한 손실과 노동조합의 요구를 받아들이므로써 발생하는 감소를 비교해서, 노동조합에 협상을 요구하기도 하고, 정부에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기도 한다.
. 자본가와 노동자는 사회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화해할 수 없는 경제 집단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와 무관하게 사회를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으로 구분하는 것은 사회 현상을 명료하게 이해하는 가장 중요하고, 근원적인 방법이다. 더 단순하게 말하면,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문제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에서 발생한다고도 할 수 있다.
. 보수와 진보의 개념도 정확히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익 대립에서 발생하는 개념이다. 궁극적인 측면에서 노사의 협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노사가 협력했다고 할 때, 그것의 실제 의미는 노조와 사측 중 누군가는 이익을 얻었고, 누군가는 손해를 감수했다는 것이다. 혹시 노조와 사측이 이익의 절충안을 찾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단기적이고, 불안한 적과의 동침일 수밖에 없다. 자본가의 이익을 우선할 것이냐, 노동자의 이익을 우선할 것이냐에 대한 정치적 입장이 보수, 진보 구분의 본질이다.
. 사측과 노조 중에 선하거나 도덕성을 담보한 집단은 없다. 상반된 방향성에도 불구하고, 두 집단의 목표는 일치한다. 자기 집단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이 그것이다. 사측의 최대 목표는 회사의 이익이고, 노조의 최대 목표는 사원의 이익이다. 노사의 문제는 단순히 누구의 이익을 우선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 보수 언론과 방송은 사측의 손해와 그로 인한 국가경제의 위축 가능성, 연관 기업들의 피해를 중심적으로 보도할 것이다. 그에 비해 노조의 파업은 과격하고 폭력적인 영상과 함께 도로,교통방해, 시민의 불편함과 연계하여 소개할 것이다. 파업의 이유와 목적은 보도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진보 언론과 방송은 노사 문제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룰 것이다. 열악한 노동 환경과 불합리한 임금, 빈부격차의 심화, 기업 경영의 부패 문제에 주목할 것이고, 정부에 의한 공권력 투입이 얼마나 과격하고, 폭력적인지를 집중적으로 보도할 것이다.
.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형 언론과 방송들은 일반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띤다. 기업과 사측에 대한 변호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학습된 대중은 친기업 성향으로 기울어지기 쉽다. 노동자가 다른 노동자의 파업에 대해 막연히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는 것, 시민이 파업의 본질보다는 파업으로 인한 불편에 집중하는 것, 이러한 현상은 미디어의 속성을 고려하면 매우 자연스럽다.
사회 집단의 정치 성향
. 군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현재 모습을 유지하고 지키려는 목적을 갖는다. 현재의 상황을 유지하려는 태도는 전 세계 군의 공통적인 모습이고, 이런 의미에서 전 세계의 군은 기본적으로 보수 성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군이 현재의 체제를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이를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갖는다면, 그것은 쿠데타로 이어지고, 그 사회의 체제는 쉽게 전복된다. 사회 안정을 위한 군의 보수와는 필요하다.
지대넓얕 1-4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