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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란 가산이라는 곳

한돈수 2021. 3. 21. 23:47

2020년 11월 23일 월요일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2주일 지났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지금 어머
님, 아버님집에서 지내고 있는데도...

너무 오랫동안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서 일까? 새벽 2시반에 잠을 깨어 한참을 뒤척여도 온갖 생각에 머리는 점점 맑아져 온다.
내가 태어난 곳은 곡반정리의 외할머니댁에서 였다. 그리고 그곳은 국민학교 시절 방학때 마다 내가 지내던 곳
이다. 그래서 아직도 막내 외삼촌과 막내 이모는 정겹다.

그리고 내가 자란 곳은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 상현리 691번지, 가산이라는 동네다. 그곳은 가운데가 쭉 논이었고 양쪽은 작은 산이었고 아래쪽으로 가면 윗방죽이 있었고, 구식이라는 동네가 있었다. 위쪽은 수원에서 풍덕천을 거쳐 성남까지 가는 비포장도로가 있었고 그 위쪽으로 가면 가산골이라 불리는 곳으로 광교산에서부터 흐르는 작은 개울이 있었다. 그 개울에는 깨끗한 물에서만 자란다는 작은 물고기와 가재가 살고 있었고 흐르는 물소리는 산 속의 고요함과 어우러져 봄과 가을에는 더 없이 시간을 보내며 놀기 좋은 곳이었지만 어린 나이에 무서움을 느끼기도 한 곳이었다.
그 비포장길을 따라 풍덕천쪽으로 조금 가면 내리막이 나오는데 내리막이 시작하는 길 옆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이름이 독을 품은 바위라하여 독바위라 불렸고 마을 이름도 독바위라고 했다. 독바위 맞은편 위쪽으로 분덕굴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독바위보다 엄청 큰 바위가 있었는데 싸움을 하여 져서 분하다고 분덕굴이라 불렸다 한다.
독바위를 지나 한 모퉁이 돌아가면 서원이 있어 서원말이라는 마을이 있고 좀더 가면 정평이라는 마을이 있었고 그곳에 수지국민학교가 있었다. 집으로부터 십리는 떨어진 곳이었다. 정평에서 큰 냇가를 따라 가면 풍덕천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이 면사무소가 있는 수지면사무소 소재지였다. 그리고 그곳은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는곳으로 한창 공사가 진행중인 국민학교 시절 모든 을씨년스러운 이야기의 근원지였다.
공사장에서 일하던 인부가 아스팔트통에 빠져 죽었다는 둥, 사고로 흙에 묻혀 죽었다는 둥..

나는 이가산이라는 마을에서 논길과 산을 오르내리며 뛰어놀고 산속의 새집과 하늘소가 사는 진이 흐르는 나이먹은 참나무를 찿아다이며, 새끼 새와 하늘소등을 잡아 기르기도 하며 자랐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비둘기 새끼 두마리를 정성들여 키워 혼자 날을 수 있는 크기에 이르렀을때, 홀연히 산속으로 날아가 몇번은 집에 들어오더니 이내 자기들의 행복을 위해 영원히 날아가 버렸다. 이 헤어짐은 나에게 우리는 서로의 행복을 위해 서로가 원하는 곳으로 떠나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것 같다.

그때 함께 수지국민학교를 다니던 같은학년의 친구들
용석, 지수, 충수, 동수 그리고 나.
충수는 저 세상으로 먼저 갔다고 했다. 그 때 이후로 한번도 보지 못한채...

지금 아련한 어렸을적 기억을 머리속에 그려보니 나름 잠시나마 행복속에 싸여있는 느낌이다. ㅎㅎㅎ

November 23 2020. Donsoo Han, sea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