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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무엇인가.(9~10월)
한돈수
2022. 3. 31. 00:34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아는가?
나는 어떻게 살것인가? 라는 것들을 생각해보고
사색하면서....
이번에 9~10월 두달분을 블로그에 업로드한다.
9/1
.이성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인생의 법칙을 배반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배반에 완전히 익숙해져서 그것을 편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그 익숙한 생활을 방해하려는 이성의 목소리를 압살하려고 애쓴다.
.사람은 자신의 생활이 양심에 합치되지 않으면, 양심쪽이 마비되어 생활에 장단을 맞춘다.
.무엇에 의해서든 자신을 마비시키는 행위는, 아직은 범죄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적어도 모든 종류의 범죄에 대한 준비 행위라고 할 수 있다.
9/2
.사람들은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타인의 잘못에 대해 너그러워진다. 그 반대 또한 진리이다.
.신은 양심과 이성의 힘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믿음의 불을 켜주고 있다. 폭력으로는 믿음의 불을 켤 수 없다. 폭력과 위협이 가져다 주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공포이다.(파스칼)
.사람들이 종교를 부정하는 것은 성직자의 편협한 마음과 권력욕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위버튼)
9/3
.신은 인간의 지혜로는 파악할 수 없는 존재이다. 우리는 다만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그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
.신성의 본질까지 꿰뚫어 보려 해서는 안 된다. 신이 계시하지 않은 것까지 알려고 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메난 드로스)
.신이라는 개념이 분명하지 않다고 해서 당황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것이 분명해질수록 진리에서 더욱 멀어져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이 약해지고 만다.
9/4
.진정한 행복은 결코 단번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얻을 수 있다. 진정한 행복은 나날이 새롭게 완성으로 가는 길을 걷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나는 내 일을 했다, 내 일에 심혈을 기울여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비로소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고생해서 일을 끝내더라도, 아무런 기쁨도 안도감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에머슨)
.노력은 행복을 획득하는 수단이 아니며, 노력 자체가 행복을 주는 것이다.
9/5
.인간이 인간에게 벌을 준다고 하는, 본디 인정할 수 없는 권리를 설령 인정한다 쳐도, 도대체 어떤 인간이 그 권리를 행사할 것인가? 오로지 자신들의 죄를 알지 못하고 그것을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타락해버린 인간들 뿐이지 않은가.
.사람들의 불행의 대부분은 죄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형벌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온다. 복수는 나에게 있으니 내 이를 갚으리라.
.악행에 대한 진정한 형벌은 범죄자 자신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며, 인생의 행복을 누리는 그의 능력이 감소하는 데 있다. 외부로부터의 형벌은 범죄자를 반발하게 할 뿐이다.
9/6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공허함을 느끼기 때문에 사방으로 뛰어다니면서 만족을 찿는다. 그러나 그들을 끌어 당기는 새로운 위안의 공허함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파스칼)
.우리가 자신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여러가지로 하고 있는 일은, 마치 타조가 제가 살해당하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머리를 숨기는 것과 완전히 같다. 아니 오히려 타조보다 더 어리석다. 불확실한 미래의 불확실한 생활을 불확실하게 지키려고, 확실한 현재의 확실한 생활을 확실히 파괴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이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미망에 빠져 있다고 해서, 미망을 미망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9/7
.만약 삶이 행복이라면, 삶의 필연적 조건인 죽음도 역시 행복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
.죽음은 자아로서의 자신으로부터 해방되는 일이다. 대부분의 죽은 사람의 얼굴에 나타나는 평화와 안도의 표정은 아마 거기서 유래하는 것이리라. 선한 사람의 죽음은 대개 조용하고 평온하다.
.늙기 전에는 나는 선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늙은 뒤부터 나는 선하게 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선하게 죽는다는 것은 곧 기쁜 마음으로 죽는 것이다. (세네카)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9/8
.어린이들에게는 크고 수많은 가능성이 있다.
.자기완성의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청정무구한 어린이들이 끊임없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 세상은 얼마나 무서운 곳이 되었을까?(존 러스킨)
.아기들은 마치 눈까풀이 눈을 보호하듯 그 영혼을 보호하고 있다. 그리고 사랑의 열쇠가 없이는 어떠한 사람도 그 안에 들어갈 수 없다.
.순진무구한 쾌활함과 사랑의 요구라는 두 가지 뛰어난 선덕이 유일한 삶의 동기인 유년 시절만큼 멋진 시절이 또 있을까!
9/9
.학문은 우리의 삶의 법칙과 그 법칙의 배반에서 생기는 결과를 밝힘으로써, 자신의 과제에 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이 중요한 것이 되려면,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사람들의 일치를 위해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들은 모든 사람에게 유일한 진리를 인정함으로써 서로 화합한다. 그 진리의 표현은 명료하고 알기 쉬워야 한다. 오늘날 학문의 표현은 명료하지 못하고 난해하기만 하다.
.소크라테스가 현명했던 것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점에 있다. (키케로)
.아무리 위대한 지식도 인생의 중요한 목적달성을, 다시 말해 도덕적 자기완성을 도와주지는 못한다.
9/10
.이기주의자는 적대적인 타자들 사이에 있는 고독한 자신을 느끼고, 오로지 자기 한 사람의 행복을 바라게 된다. 선량한 사람은 우애로 가득한 존재들의 세계에서 살며, 그 모든 존재의 행복이 그 자신의 행복이 된다.
(쇼펜하우어)
.양심의 소리는, 언제나 그것이 이욕을 떠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없으며, 그러면서도 매우 아름답고, 우리의 노력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는 무언가를 늘 요구한다는 점에서 다른 모든 심적 동기와 구별되고 있다. 그 점에서 양심의 소리는 자주 그것과 혼동되는 명예욕과도 구별된다.
9/11
.진실한 신앙은 믿는 자에게 행복을 약속함으로써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인생의 불행은 물론이고 죽음의 공포에서도 달아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끌고 있다.
.그것을 위해서는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종교적 의식도 아니고, 이런저런 교의를 신봉하는 일도 아니며, 자기 인생의 의의를 확실하게 이해하는 일이다.
9/12
.부를 가지려 하는 노력과 진실한 정신적 생활의 요구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두꺼운 옷은 몸의 움직임을 방해한다. 부는 영혼의 활동을 방해한다.
.가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부를 두려워하라.
.나는 부가 행복을 준다는 낡은 미신은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9/13
군자는 모든 것을 자신에게서 찿고 소인은 모든것을 남에게서 찿는다.
자신의 처지에 불만이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두 가지 방법으로 바꿀 수 있다. 즉 자신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개선하는 것이다. 잎의 것은 언제나 가능하다고 할 수 없지만, 뒤의 것은 언제라도 가능하다.
자신의 사상은 손님처럼 대하고, 자신의 욕망은 어린애처럼 대하라.
우리는 다른 사람이나 주위의 사정에 불만을 느끼면 느낄 수록, 그리고 자신에게 만족을 느끼면 느낄수록 예지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9/14
어리석고 거칠고 무지한 사람일수록 폭력에 호소한다. 폭력을 행사하는 데는 많은 협력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설득을 하는데는 협력자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
폭력으로 사람들을 정의에 따르게 할 수 있다고 하여, 사람을 폭력으로 복종시키는 것을 정의라고 할 수는 없다.
인생은 우리가 그 비열함을 잘 이해하기만 하면 참으로 멋진 것이 될 수 있다.
모든 폭력은 이성과 사랑에 반하는 것이다. 절대로 거기에 가담하지 말라.
9/15
진리를 인식하는 데 가장 큰 장애는 허위가 아니라 거짓 진리이다.
인식의 세계에서 인류의 진보는 진리를 덮고 있는 덮개를 벗기는 것에 있다.
적발된 허위는, 인류의 행복에 있어서 명백하게 표명된 진리와 마찬가지로 소중한 재산이다.
진리는 아무리 그것이 무슨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다 하더라도 탐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전혀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 그 효능이 드러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9/16
불신은 인간이 무엇을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가 믿지 않는 것을 믿고 있다는 뜻이다.
이따금 영혼의 삶을 믿지 않게 될 때가 있다. 이것은 불신이 아니며, 그때 우리는 육체의 삶을 믿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삶은 영혼에 있다.
9/17
토지의 사유제도는 노예제도, 즉 인간의 사유제도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을 정의에 어긋난다.
현재 토지의 사유권이 합법적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침략, 약탈, 폭력, 기만, 강권, 간계 ... 토지 사유권의 발생 원인은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토지의 사유제도라는 부정은 다른 모든 부정과 마찬가지로, 그 제도를 지키기 위해 온갖 부정이나 악행으로 이어진다.
.... 그럼, 장점은 무엇인가?
9/18
생명의 본질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에 있다.
내가 인간의 영혼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 스스로 독립적인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마음을 움직여 정신적 생활에 눈뜨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영혼은 보이지 않지만 영혼만이 모든 것을 본다.
인간은 이성에 의해 산다. 결코 생명의 본질을 육체에, 이 이성이라는 내면의 힘을 담는 그릇에 돌리지 말라.
영적인 것이 육체적인 것을 이끄는 것이지 결코 육체적인 것이 영적인 것을 이끄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개조하려면 육체적인 자신에게가 아니라 영적인 자신에게 작용해야 한다.
9/19
종교적 불신과 신성 모독이 아무리 큰 악이라 해도, 미신은 그보다 더 큰 악이다.
사람이 타락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그들이 진리를 믿지 않고 거짓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9/20
선은 노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불굴의 길을 끝까지 가는 사람은 아무리 무지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현명해지고,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끊임없이 선량한 삶에 마음을 쏟는 사람만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
9/21
사물을 보는 눈이 정확해지면 진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진실을 알면 의지는 정의를 지향하고, 그 의지가 충족되면 마음이 선량해진다.
세상의 미움은 미움으로 풀어지지 않는다. 미움은 미움이 없을 때만 풀어진다. 이것은 영원한 진리이다.
생각을 신중히 하고, 말을 신중히 하고, 모든 악행을 피하라. 이 세가지 길을 닦으면 너는 진리의 길에 들어설 것이다.
9/22
인간은 원래 영원한 삶을 믿도록 창조되었다.
죽음은 자신의 생명을 끝낼 수는 있지만, 자신의 존재를 끝내는 일은 절대로 할 수 없다.
영혼은 육체 속에서 자기 집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잠시 머무는 거처로 살고 있다.
인생이란, 세상의 손님이 되어 지낸 덧없는 하루의 추억과 같다.
우리가 사는 것은 그저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늙는 것을 모르고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지금 바로 이 순간 저곳이 아니라 이곳에 있어야만 하는 아무런 근거도 없다.
인간은 원래 영원한 삶을 믿도록 창조되었다.
9/23
지식은 무한하여 사람들이 최고의 학자라고 인정하고 있는 사람도 배우지 못하고 글을 모르는 농부와 다를 것 없이 진정한 지식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장님이 눈을 뜨지 않는 한 어둠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학문의 힘이 아니면 자신의 무지를 깨달을 수 없다.
9/25
노동은 선은 아니지만 선한 생활의 필수 조건이다.
진정한 노동은 언제나 조용하고 질서정연하며 눈에 띄지 않는 법이다.
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다. 노동과 걸식과 도둑질이다. 만약 노동자의 몫이 적다면 그것은 거지와 도둑의 몫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헨리 조지)
9/26
도덕률은 참된 지혜에 의해서도, 참된 믿음에 의해서도, 똑같이 명료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것을 자주 그리고 오래 생각하면 할수록, 늘 새롭고 더 큰 경탄과 존경으로 내 마음을 채우는 것이 두 가지 있다. 내 머리위에 있는 밤 하늘과 내 마음속에 있는 도덕률이 바로 그것이다.
9/27
나를 심판하려거든 내 옆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들어와 보아야 한다.(미케비치)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우리의 마음의 눈이다. 우리는 남의 나쁜점을 알아보는 데는 눈이 밝으면서, 자신의 나쁜점은 전혀 보지 못한다.
9/28
사람들의 대부분의 행위는 이성에 의한 것도 아니고, 감정에 의한 것도 아니며, 거의가 무의식적인 모방이나 암시에 의한 것이다.
자신의 판단과 내면적 동기에 의하지 않고, 외부의 영향에 의해 행동하고 싶어질 때는, 잠시 멈춰서서 자기를 끌어 들이려 하는 그 영향이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잘 판단해 보아야 한다.
9/29
어떤 사람이 강 건너편에 살고있고, 그의 황제가 내 황제와 싸우고 있다는 이유로 그와 나 사이에 무슨 나쁜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에게 나를 죽일 권리가 있다고 하는 것보다 더 불합리한 얘기가 또 있을까?(파스칼)
사람들이 전쟁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는 날은 꼭 올 것이다. 자신들의 공통의 적은 빈곤과 무지와 질병이고, 그러한 무서운 불행과 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자신들의 불행한 인류 형제와 결코 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해 할 것이다. (샤를 리세)
9/30
인생의 중대한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언제나 고독하다.
파스칼은 말한다, 사람은 혼자서 죽어야 한다고.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또 혼자 살아야 한다.
남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면서 자신은 남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10/1
진정한 현자는 무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가 두려워 하는 것은 오직 하나,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참된 지혜는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이고 무엇이 그 보다 덜 좋은 것인지, 따라서 무엇을 먼저하고 무엇을 나중에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10/2
윤리학은 인생에 대한 종교적 이해에서 생기는 행동의 지침이다.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아라. 영원히 살 것처럼 일하고 당장 죽을 것처럼 사람들을 대하라.
10/3
부는 우리에게 결코 만족을 주지 않는다. 부가 늘어남에 따라 욕망도 함께 커지기 때문에, 부가 크면 클수록 욕망의 만족도는 낮아진다.
재산 그 자체는 분모가 없는 분자처럼 지극히 의미가 적은 것이다.
조금밖에 가지지 않은 사람이 가난한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을 바라는 사람이 가난한 것이다. (세네카)
10/4
사랑은 그것을 경험하는 자에게 정신적, 내적 기쁨을 줄뿐 아니라, 세상을 즐겁게 사는데 중요한 조건이다.
사람들에 대한 너의 선의를 이웃에 대한 선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너는 그 선물을 너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의 삶을 사는 것이다.
10/5
선한 일은 언제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노력이 여러번 되풀이 되는 동안 그 선한 일은 습관이 되어 버린다.
너에게 선을 행하도록 가르치고 훈련시켜주는 것은 모두 소중히 하라.
10/6
병자가 생활을 완전히 중단하고 질병 치료에만 전념하는 것보다는, 불치병이든 나을 수 있는 병이든, 병 같은 것은 아예 무시하고 평소대로 생활하는 것이 낫다. 설사 그것 때문에 생명이 단축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며, 끊임없이 자신의 육체를 두려워하고 걱정하지 않는 만큼 훨씬 나은 삶이라고 헐 수 있다.
마음의 병은 육체의 병보다 위험하고, 또한 더 흔하게 볼 수 있다.
질병을 두려워하지 말고 치료를 두려워하라. 병을 빙자하여 자신의 도덕적 요구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하기 쉽다는 점에서 두려워하라는 뜻이다.
10/8
모든 사물의 기원은 비밀이다. 모든 개인과 집단의 생명의 원인은 비밀이다. 그것은 이성을 초월한 것, 설명할 수도 없고, 정의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모든 개개인이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이며, 그 어떤 기원도 해명할 수 없다.
어떤 일이 이루어 졌을 때, 그것은 언제나 창조의 기적을 전제로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무언가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10/9
자신의 생명이 자신의 영적 자아에 있음을 인식하는 사람에게는, 삶에 있어서나 죽음에 있어서나 악이 있을 수 없다.
10/10
동물로서의 인간은 죽음에 저항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영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죽음을 모르고 따라서 죽음에 저항할 수도 죽음을 원할 수도 없다.
죽음은 의심하는 대상의 변화 또는 소멸이다. 연극의 막이 바뀌었다고 해서 손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의식도 죽음에 의해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죽음에 대한 관념이 당연히 우리에게 주어야 할 영향을 주지 않고 있는 까닭은, 우리는 행동적인 존재로서의 본성으로 인해, 실은 결코 죽음을 생각해서는 안 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10/11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정으로 존경할 만한 것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 유해한 것을 자랑한다. 즉 권력과 부귀가 그것이다.
교만한 인간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자신의 인간적인 존엄성을 의식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만을 존중하지 남들의 의견은 문제삼지 않는다.
자만심이 강한 사람은 언제나 어리석다. 이 둘은 서로 상관관계가 있다. 사람은 자만 때문에 어리석고, 또 어리석음 때문에 자만한다. 그는 자신이 좋은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의식하기 때문에,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은 모두 좋은 것이라고 스스로 설득한다.
10/12
한번 몸에 밴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기완성을 향한 첫 걸음은 언제나 그러한 벗어남에서 시작된다.
너희는 남들의 생각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에 의해 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원칙은 실생활에 있어서나 정신생활에 있어서나 똑같이 필요 불가결한 것이다.
10/13
힘은 서로의 사랑 속에 있으며, 나약함은 서로의 적대 관계 속에 있다. 우리는 사랑에 의한 합일에 의해 살고, 불화에 의한 분열에 의해 멸망한다.(류시 맣로리).
깨어난 사람에게는 이른바 국가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모든 폭력행위는 변명의 여지없는 악이다.
10/14
예술은 사람들을 동일한 감정으로 묶어주는 인간적인 활동이다. 만일 그감정이 좋은 것이면 예술의 활동은 유익한 결과를 맺고, 나쁜 것이면 나쁜 결과를 맺는다.
10/15
인간의 사명은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일이다. 자신의 영혼을 지킨다는 것은 그것을 기르고 확대시키는 것이다. 그 확대는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의로운 사람들이 하는 일은 흙에 뿌려진 씨앗과 같은 것으로, 그것은 때때로 역사라는 흙 속에 오래동안 움직이지 않고 묻혀 있지만, 그것이 따뜻한 태양과 비를 만나 새롭고 건강한 수분과 싱싱한 생명력을 흡수하면, 그 씨앗에서 싹이 트고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된다. 그러나 폭력과 부정에 의해 뿌려진 씨앗은 썩거나 시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탈무드)
개개인의 생명의 의의는, 개인적인 자기완성과 세계 전체의 생명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에 대한 봉사 속에 있다.
자기완성이라는 것은, 자신의 자아를 육체적 생활에서 정신적 생활, 즉 시간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모든것이 행복할 수있는 정신생활로 옮겨가는 것이다.
10/16
사람을 아는 자는 지자이지만, 자기 자신을 아는 자는 진정한 현자이다. 자기 자신을 아는 자는 신도 알게 된다.
10/17
인간의 종교적 의식은 결코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를 계속하면서 더욱 분명해지고 더욱 순수해져 간다.
10/18
네가 행할 수 있는 선은 지금 당장 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기회는 한번 지나가면 다시 되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뉘우침은 모두 유익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언제나 현재를 그 현재의 힘에 걸맞게 이용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기 때문이다. 뉘우침이란 현재의 순간 순간을 어떻게 행동해야 했는지에 대한 반성이다.
10/19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믿고 무엇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는가? 철학의 모든것은 이 세가지에 귀착된다."고 철학자 리히텐베르크는 말했다. 이 세가지 문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가운데의 문제이다.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알고 있는 것은 알아야 할 모든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자신의 일을 찿아낸 사람은 행복하다. 그는 이제 다른 행복을 찿을 필요가 없다. 그에게는 일이 있고 인생의 목적이 있다.
10/20
인생은 그것이 의무의 수행이며, 봉사라는 걸 깨달을 때 비로소 합리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세계에서의 나의 생명에는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봉사자로서의 의의가 있음이 명백하다. 또 육체적 존재로서의 우리는 항상 그 정복자나 죽음 자체와 직면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것은 우리의 눈이 보는 바, 마음이 이야기하는 바이며, 자연 전체가 증명하는 바이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의 생명의 법칙이다.
10/21
폭풍이 물결을 일으켜 물의 투명함을 잃게 하듯이, 정욕과 불안, 동요, 공포는 마음을 어지럽혀 사람이 자신의 본질을 의식하는 것을 방해한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평화롭고 언제나 만족한다. 빈약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불만이요, 언제나 무관심하다.
언제나 한결같이 평안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지만, 평안한 때가 찿아오면 그것을 소중히 하고, 가능한한 오래 지속되도록 힘써야 한다. 평안할 때야 말로 여러가지 사상이 명료해지며, 튼튼해지는 때이다.
10/22
시간은 지나가도 말은 남는다.
우리의 불안과 동요의 대부분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바로잡는 것을 잊고, 남을 바로잡으려 하는 데서 생긴다.
10/23
양심은 우리의 내부에 살고 있는 신적 본원을 의식하는 일이다.
양심이야말로 선악의 확실한 심판자이다.양심을 제외하면 인간에게 동물보다 나은 점은 아무것도 없다.
네 양심이 경계하는 것은 하지 말고, 진실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말하지 말라. 그렇게 함으로써 너는 네 전 생애의 사명을 완수하게 될 것이다.
인생의 사명은 다수자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네가 의식하는 내면적 법칙에 따 사는 것에 있다.
10/24
만약 우리 모두의 생명의 근본이 같지 않다면, 우리가 늘 경험하는 동정이라는 감정을 설명할 길이 없다.
누군가의 분노를 진정시키려면 , 화를 내고 있는 사람에게, "하지만 저 사람도 불행한 사람 아닌가!" 하고 말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빗물이 불을 끄듯, 동정은 분노를 사라지게 하기 때문이다.
'너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도 많다. ' 확실히 이 말은 네가 사는데 지붕 역할은 못하더라도, 비를 피하기에는 충분하다. (리히텐베르크)
10/25
정신지체자를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만큼, 그 사람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은 없다.
개인의 자유,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오직 개인의 자유 위에서만 민중의 자유가 성장한다. (게르첸)
10/26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자 할 때, 자신의 다양한 욕망을 정화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극히 평범한 의무를 수행하는 것에 만족하는 대신, 뭔가 매우 어렵고 놀라운 일을 하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실은 전자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을...(페늘롱)
사람은 사색에 의해서가 아니라 실천에 의해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실천하는 노력 속에서만 자신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괴테)
10/27
참된 종교는 이성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장님이 빛을 보지 못한다 해도 빛은 역시 빛이다.
10/28
고통의 감각이 우리 육체의 보전에 없어서는 안되는 조건인 것처럼, 마음의 고뇌는 우리 영혼의 보전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조건이다.
폭풍 속에서 비로소 항해사의 솜씨가 발휘되고, 싸움터에서 비로소 군인의 용감성을 시험할 수 있듯이, 인간으로서의 용기는 그가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위험한 상황과 직면했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다.
순탄한 환경에 길들지 말라. 그것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가진 자는 잃는 것을 배우고, 행복한 자는 고생하는 것을 배워라.
10/29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대신 생각해주는 사람의 영향하에서 만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사상을 팔아넘기는 것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육체를 팔아넘기는 것 이상으로 수치스러운 노예 행위이다.
나쁜 영향은 좋은 영향에 의해서만 깨뜨릴 수 있다. 좋은 영향을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은 좋은 생활이다.
10/30
일정한 한계를 넘는 자기애는 마음의 병이다. 그것이 극한에 다르면 이른바 과대망상이라고 하는 정신적 질환이 된다.
자기애는 개개인의 육체적 생활을 보전하기 위해서만 필요하며, 그러한 범위 안에서 자기애가 적용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본래 분열을 없애야 하는 사명을 가진 이성이 반대로 분열을 옹호하는 것에 사용될 때는, 자기애는 유해하고 고통스러운 것이 된다.
10/31
시간의 흐름과 함께 신성화된 낡은 전설을 고수하는 것만큼 진리의 보급을 크게 방해하는 것은 없다.
2020년 1/2 독완
2021년 1회 독완 (9/1부터 요약 시작)
2022년 2회 독중 ( 3/30까지 읽고 블로그에 업로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