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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훈련소의 기억

한돈수 2023. 1. 7. 16:21

새벽녁 머리에 생생하게 떠오르는 45년전의 일이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1979년 1월, 대학 3학년을 마치고 조금 늦게 병역 의무를 수행하러 떠난다. 그 때는 병역 의무를 마치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그냥 있으면 육군에서 차출 명령이 오면 따르는 것이고, 공군, 해군, 해병대는 지원하여야 했고, 전투 경찰은 시험을 보고 합격해야 갈 수 있었다. 나는 조금은 편하고, 산보다는 바닷가에서 생활을 하고 싶어 전경(전투 경찰)에 가기로 했다.

전경은 처음 입대는 육군의 논산 훈련소로하고, 8주간의 훈련을 마치면 내무부 소속의 전경으로 근무하다가 전역을 할 때는 다시 육군 소속의 특기 보병인 병장으로
제대하게 된다. 그 시기의 학생 운동과 삼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의 해안 경비를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병역 의무를 할 수 있는 조직인 것이었다.

여하튼, 1979년 1월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여 1주간의 시간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그 시기를 무사히 넘겼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자마자 연병장에 1.5미터의 거리를 두고, 정렬하여 세운 후, 입고있던 모든 옷을 벗기고 군대에서 지급하는 펜티, 런닝, 내의, 군복으로 갈아 입힌다. 거기에는 수치심도 쪽팔림도 없다. 명령과 복종 그리고 두려움만이 있을 뿐이다 . 입었던 옷은 모두 싸서, 소포로 집으로 보낸다. 그 때 이 세상에 나 홀로 남겨져 무슨일이 일어나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든다.

이 시간 후로는 엄청난 변화가 몰아 닥친다. 식사 시간에 배식이 완료된 후, 먹기 시작하면 3분도 않되어서, 식사 그만 하며, 모두 내 쫒는다. 이러고 나면 밥은 씹지도 않고 후다닥 배속으로 집어 넣게 된다.

점호를 마치고 자려고 하는데, 갑자기 비상이란다. 부지런히 옷을 입고 나오니 워카가 작은 것 밖에 남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의 워카가 아닌 것을 신고 나간 것이다.나중에 신발이 적은 것을 꾸겨 신었다고 벌을 받았다.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시간에 늦은 것도 아닌데, 남의 신발을 신고 나간 놈이 잘못이지, 왜 내가...

하지만 훈련소에서 원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빨리 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기에 그러려니 생각했다. 그 후로도 이것 저것 훔쳐가는 것이 생활화되어 빼앗기지 않으려 무척 애쓰며 생활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누군가 조금만 잘못하면, 단체 기합이다. 수없이 벌을 받는 것이 일상이다.

이런 저런 변화에 적응하다보니 일주일 동안 대변도 보지 못한다. 모든 것에 신경을 곤두 세우고, 동물적인 본능으로 살아야 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 때를 이겨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육군의 경우에는 논산 훈련소에서 4주의 훈련만 받으면 자대 배치를 받는다. 하지만 전경은 8주간의 훈련을 받았다. 떠나가는 훈령병을 보면 나는 언제나 이 곳을 떠날 수 있을까 앞이 보이지 않는 너무나 먼 미래의 일인 것 처럼 생각되었다. 하지만 막 훈련소에 입소하여 똥 오줌 못가리는 신병들을 보면, 다 지나온 시간이기에 군기잡느냐고 또 저렇게 하는구나. 저러면서 논산 훈련소에서 군 생활을 하고 있는 저 사람들은 얼마나 신병들의 모습이 우스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가족과 국가와 민족을 지킨다는 사명으로 그 시간을 버텨냈지만, 45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해보면, 너무나 끔찍하고 몸서리 쳐지는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 생각이 났나보다.

October 08 2022. Donsoo Han, sea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