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들 (2022-2)

삶은 행복과 불행의 연속이다. 그 느낌의 크기가 크고 작음에 따라 격정기와 평온기가 있을 따름이고, 시간은 그 느낌의 크기를 점점 작게 만든다.
내가 평온할 때, 남들의 행복과 불행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 잔잔하고 평온한 삶을 살도록 수행하자.
.엄청 커다란 잘못도 매우 오랜 기간을 증오에 휩싸여 지내다가 언젠가는 뉘우치고 용서를 비는 때가 온다. 그런데 용서할 수도 용서를 빌 수도 없는 때가 오기도 한다. 그때가 바로 죽음 앞에서다.
.문희가 보내준 영상(April 07 2022)에서
왜 유비는 엄마 이름을 한이 문희라고 했나. 그리고 자기와 아빠 이름을 한 로아라고 했는가. 동생 로아 이름을 한 로이라고 새로 지었을까.
유비에게 물어보고,
곰곰히 생각하여 유비 자아에 깃들여져 있는 두려움이 없어지게 하여 맑고, 밝고 환한 유비의 미소와 웃음이 만발하길 바란다.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내 인생의 시간을 담보로 살아온 긴 세월. 은퇴후 오미크론에 걸려 편히 쉬면서 생각해보니, 그 때는 자신을 꼼짝 못하게 하는 긴장 속에서 살아 왔다는 걸 확실히 알게한다.
자유도 누려 본 사람만이 그 소중함을 알 수 있듯이, 여유롭고 평화로운 삶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회 생활의 시작에서 갖고 있는 자본이 없기 때문에 매우 불평등한 계약을 하게 된다.
그 계약은 자신의 열정, 시간등을 쏟아부어 이룬 성과의 약간 만을 보답으로 받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기에 그 굴레에서 빠져 나오는데는 엄청 난 용기가 필요하다. 결국 거기에서 청춘을 다바쳐 나이를 먹게 되면 정년이란 이름으로 그곳을 떠나게 된다.
그때부터 은퇴란 이름으로 자유롭게 살라고 하지만 멍애줄에 메여 주위만 빙빙도는 길들여진 소처럼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겨우 멍애를 벗어 던지고 마음껏 살아보려하니 어느새 몸의 이곳 저곳에 이상이 생겨 끙끙 앓다가 그 삶을 마무리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의 세상이 바라는 인생의 줄거리인 것이다.
.얻을 것이 없고, 얻으려는 생각조차도 없을 때, 사람은 진정으로 자유로워 진다.
.이제 어느 정도 살아보니 그 시대를 움직인 진정한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앞에나서 떠든 사람들이 아니라, 국민과 사회의 실질적 삶을 개선하기 위해 주어진 위치에서 성실히, 묵묵히 일해온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이다.
정치 사회적 성숙도 경제적인 발전에 따라 서서히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자신의 입으로 모든것을 이루어낸 것처럼, 그 과실을 따먹고 있는 입만 살은 자들을 보면 구역질이 난다. 우리가 한창 젊은 시절에도 그들은 사회의 쥐새끼같은 존재였다. 왜 그들이 지금 이렇게 떠들며 살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열심히 삶을 개척해나가는 젊은이를 보면서 조용히 살아갔으면 좋으련만.
.여유롭고 평온한 삶을 위해 어느 정도의 자산이 필요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간혹 소유하고 있는 자산을 지키기 위해 불안해 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은 하루를 편안하게 살기 어려운 가난보다는 엄청 경미한 것이다.
.과거나 미래 쪽에 한눈을 팔면
현재의 삶이 소멸해 버린다.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항상 현재일 뿐이다.
65세가 된 지금 나에게 공감을 주는 글귀다.
.아침에 산뜻하게 일어날 수 있음은
편안한 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밤에 평온하고 깊은 잠을 잘 수 있음은
낮에 충만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은 낮과 밤의 관계와 비슷하다.
밤의 잠은 매일 매일의 죽음과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삶과 죽음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낮과 밤이
기나긴 밤으로 바뀌는 순간을
죽음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그 긴 잠은
인생을 같이 했던 사람들의
기억, 추억들과 함께 하며
시간과 함께 사라져 간다.
(햇빛 좋은 날 아침에 창가에 앉아서)
.고요한 호수는 하늘과 산 그리고 나무들, 지상의 모든 것을 품는다. 그 고요한 물 속에는 수많은 관용과 평화로움이 존재한다.
반면 가벼운 바람에 일렁이는 호수는 아무것도 품지 못한다. 단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일 뿐, 물속은 전혀 알 수가 없다.
태풍이 일때 호수는 누구도 근처에 접근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성난 야수처럼.
사람의 마음도 호수와 유사하다.
.나무 가지에 돋아 나는 새싹은 이 세상에 보여줄 비밀을 간직한 듯, 잔뜩 오무려진 봉우리이다. 하지만 그 봉우리가 잎이되고 물들어 어느 차가운 가을 날, 이는 바람에 땅으로 떨어져 자연으로 돌아갈 땐,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빈 것으로 잎을 쫙 편 모양이다.
인간 또한 손을 꼭 쥔 채 태어나서, 손을 펴고 죽음을 맞이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죽은 후에도 영원히 존재하는 세상, 이 영원한 세상의 일부분을 아주 잠시, 생명을 갖고 있다 가는 나의 삶은, 이 세상에 정착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잠시 여행하는 나그네 처럼 지나가는 것이다. 65세가 다된 지금부터라도 이 세상을 지나가는 것 처럼 살아보자. (May 10 2022)
.권력이란 무엇일까.
.강한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자식들에게 뭔가 해줄 때에는 즐겁고 행복한데
자식들에게 뭔가를 부탁할 땐
왜 이리도 미안한 걸까.
.삶과 사회는 추상적인 것이다.
개인이 순간 순간에 하는 일들이 모여져
삶이되고,
개인의 삶이 모여 사회라는 실체가 이루어 진다.
.우리의 삶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생의 족쇄를 차고 살아간다.
죽음을 삶의 완성의 한 부분으로
평온하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좀 더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May 12. 2021)
.육체의 눈과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물과 영혼은 모두 존재하는 것이다.
죽음이 오면 육체는 사라져도 사물과 영혼은 존재한다.
단지 시간과 함께 희석되어 희미해 질 뿐이다.
.영혼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다. 내가 살면서 생각하고 경험하여 선택한 영혼들은 나의 영혼이 된 것이다.
.내가 선뜻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그 설레임 보다
나에게 가해질 스트레스가 더 크기 때문이다. 설레임이 더 큰 여행을 계획해 보자.
.호수가의 벤치에 앉아 호수의 물을 보고 있으면 배를 타고 가는 느낌이 난다. 이 세상을 내가 사는 것도 상상도 할 수 없이 커다란 우주의 수 없이 많은 별중에 아무도 랄지 못하는 지구라는 아주 작은 점과 같은 구슬, 그 표면의 어딘가에 붙어 잠시 착각에 빠져 있는 것과 같다.
.자유로운 사람이란.
도덕적 범주안에서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를 시간과 장소등의 구속없이 행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바람이 호수면에 불어오면 물결이 친다. 세게 불면 그 만큼 더 출렁인다. 억지로 잔잔한 호수면을 고집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로 살아감이 자연스럽다.
(May 22 2022. Donsoo Han, seamind)
.단순함이란.
깊은 산속에서 어둠이 내릴때
검은 숲과 산의 실루엣이다.
이것은 다양한 숲속 나무들의
색깔과 모습을 머금고 있다.
(May 25 2022. Donsoo Han, seamind)
.이른 아침
빈 강의실의 햇빛 드는 창가에 홀로 앉아
종이컵 커피와 담배 한대.
고요하고 자유롭게 피어 오르는
담배 연기를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은 평온에 젖어든다.
눈을 감으면
드 넓은 공간에 펼쳐지는 고요함.
나를 맑고 평화롭고 행복한 상태로 만든다.
(담배 피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May 26 2022)
.샘물처럼 살고 싶다.
언제나 맑고 새롭게 다시 태어나고
물이 흐르지 않아도 조금씩 솟아나
언제 어디에 있어도 썩지 않는.
고요하고 맑고 청량하게.
(May 28 2022. Donsoo Han, seamind)
.침묵은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평온하고 조용한 상태에서 말 없이 잠잠히 있는 것을 말한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 속으로 비난하고 있으면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말 없는 상태인 것이다.
(May 30 2022. Donsoo Han, seamind)
.바위 틈에서 자라는 나무는 다른 나무보다 물을 구하기도 어렵고 틈이 비좁아 뿌리가 커지고 뻗어 나가기도 어렵다. 그래서 모습도 왜소하다.
하지만 태어 난 자신의 생명을 살기위해 최선을 다한다. 다른 나무들과 비교하거나 시기하지도 않으면서 홀로 당당하게 그리고 그냥 그 나무답게 살아간다.
언젠가 생명이 다 하는 날, 그냥 자연으로 돌아가 썩어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남에 보탬이 된다.
사람도 자신이 태어 난 대로 자기답게 살다가 수명이 다하는 순간을 맞이하면 되는 것이다.
순수하고 단순하게... (June 06 2022 DonsooHan)
.아내의 마음이 평온하지 않은 것 같다. 아침에 딸의 전화를 받고 자궁에 0.9센티 정도의 혹이 있어 제거 수술을 해야한다는 것을 듣고서 부터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저런일이 있거늘, 아주 커다란 일이 아니면 그냥 가볍게 지나가면 될것을.
생각에 따라 마음의 상태도 변화한다.
편하게 생각하며 살줄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생명을 갖고 있는 것 들 이라면
새, 개, 돼지, 소, 고양이, 개미, 쥐, 사슴벌레 등 모두가
그 생명을 다하는 순간의 느끼는 감정은 비슷할 것이다.
내가 동물의 죽음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동물이 나의 죽음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같을까.
.화초의 긴 잎이 무성하여 볼품이 없다.
나름의 기준을 갖고 가위로 긴 잎을 일부 잘랐다.
조금은 모양이 좋아진 것 같다.
헌데 이 잘라진 긴 잎은 무엇인가.
이 화초가 살아남기위해 희생된 것이다.
이 세상이 유지되기위해 자의든 타의든 모든 것은 희생되고 또 태어난다.
모든것은 희생을 머금고 살아간다.
.새로운 연령 구분
0~17 : 미성년, 18~65 : 청년, 66~79 : 중년,
80~ 99 : 노인, 100~ : 장수노인.
.사람이 휴식, 여유로움보다 일하는 고단함을 정말 좋아할까. 고단하게 일하는데는 어떤 이유가 있다.
경제적, 정신적, 육체적인 부족을 채우기 위함이다.
만약 은퇴후의 준비가 충분하다면 나태해짐을 방지하기위해 나름대로의 적절한 설레임을 갖어야 한다.
.양자이론,
모든 물질과 생명은 원자로 만들어져 있다. 거의 모든 원자의 구성물은 완전한 상태의 무생물이다. 단지, 아주 조금만이 불완전한 생물의 상태로 매우 짧은 기간동안 존재하다 완전한 상태의 무생물로 되돌아 간다. 이렇게 불완전한 생물의 상태에서 완전한 무생물의 상태로 변하는 것을 우리는 죽음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자연 생태계에서 죽음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무엇일까.
인간이 인간이기위해 꼭 필요한 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이다.
물질적 본질은 원자, 정신적 본질은 영혼.
.하늘 높은 곳에서 하나의 날개짓도 없이 기류를 타고 유유히 날아가는 매의 모습은 자연과 하나되는 지혜를 느끼게 한다.
.한인회관 한쪽 벽면에 무궁화가 한창이다.
무궁화는 100여일 동안, 계속 꽃이 피었다 떨어지는 끈질김이 매우 강한 꽃나무이다.
그리고 꽃 몽오리가 자라서 꽃이 피기 전에 꽃을 돌돌말은 모양을 하고 있다가 꽃이 만개하고 꽃이 질때도 꽃을 돌돌말은 모양으로 있다가 떨어져 자연으로 되돌아간다.
처음과 끝이 말끔하게 정리된 정숙하고 청렴한, 이 세상을 고귀하고 맑게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모습이다.
.새끼를 지키기 위한 어미 새의 행동에는 자신의 의지보다 강한 어떤 힘을 갖고 있다.
'사랑은 죽음보다, 죽음의 공포보다 강하다. 오직 그것에 의해서만, 오직 사랑에 의해서만 생명은 유지되고 움직이는 것이다.'
.나의 자유와 행복을 방해하는 것은 없다. 그리고 내 삶의 마지막은 나 홀로, 혼자서 맞이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인간은 모두 고독한 존재이다.
.내가 있는 곳이 밝으면 어두운 밖은 보이지 않고, 내가 있는 곳이 어두우면 어두운 밖이 잘 보인다.
자신을 낮추고 살아야 모든 사람과 소통이 가능하다.
.깊은 숙면을 하고, 동 트기전 시내의 야경을 보면서, 아들네가 사다준 고진단을 천천히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감사함의 생각이 가득찬다.
모든 삶이 생각하면 할 수록 감사함에 둘러싸여 있다.
.보고 느끼고 사랑하고 나눌 수 있음은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사람은 누구나 필연적으로 혼자서 감내해야만 하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 순간을 엷은 미소로 보낼 수 있도록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며 살아가자.
.밖이 점점 어둠을 희미하게 만들고 있다. 조금 전만해도 어둠이 선명했는데, 순간 순간이 모여 이런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에 숙연해진다.
인간의 삶도 순간 순간이 모여 그 마지막 순간에 도달할 것이기에 지금의 이 순간에 충실하여야 한다.
.은퇴란 노동에서 자유로워 지는 것이다. 노동의 반대는 여가이다. 그러므로 은퇴후의 활동은 봉사, 취미 활동등의 여가에 쓰여지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다.
.호숫가의 바람이 신선하다. 호수 건너편의 구름이 동화책에서 본 형상이다. 호숫가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평온하고 조용히 있는 나의 모습은 내가 삶의 한 가운데서 발버둥 칠때, 그토록 원하고 상상하던 것이었다.
이런 지금의 순간에 감사함이 넘쳐나지 않음은, 내가 많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모양이다.
.하늘의 구름도 맨 눈으로 볼 때보다, 선글라스를 끼고 보면 더 멋지고 선명하게 보인다. 삶에 이루어 지는 인생사도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선글라스를 끼고 보면 좀 더 현명하게 보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맑은 물 속도 햇빛이 없으면 보이질 않는다.
선행도 맑은 마음과 선함이 없으면 보이질 않는다.
.9월 1일이다.
하버 프런트의 단풍나무 잎도 그 푸르름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사람도 나이 듦에 따라 탄력이 줄어듬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약간의 차이는 상관없으나, 나이와 어울리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인위적인 탄력은 뭔가 부자연스럽고, 비 인간적인 모습이다.
계절에 어루어지는 자연처럼, 세월에 어루어지는 삶을 살고 싶다.
.재산이 300억 이상이면 돈이 많고 적음에 의미를 두지않게 된다. 1000억 이상이면 돈을 지키는데 시간과 관심을 다 쓰게 된다.
20~30억 정도면 그냥 검소하게 살면, 풍족한 삶이 되지 않을까.
건강은 천만금보다 더 소중하다.
근심, 걱정없는 평온한 삶은 누구나가 바라는 것이다.
. 아름답다.단풍은
단풍 나무라는 식물의 존속을 위해
한 겨울의 모진 한파 견듸어 내고
따뜻한 봄 날 새싹을 틔우고
한 여름의 땡볕 더위를 받으며
죽자 살자 열심히 일하다
쌀쌀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오면
하던 일 내려놓고
예쁘게 단장하고 있노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멋지고 숭고하게 살았음을 축복해 준다.
또한 단풍이 떨어지는 그 순간 까지도
환호성과 박수 갈채로 맞이해 준다.
가을을 맞아
소명을 다해가는 나뭇잎
단풍의 무리가 넓게 넓게 퍼져있으면
사람들은
그 장엄함에 또 한번의 환호를 보낸다.
단풍은 단순히
그들에게 생명을 준
자연으로 잘 돌아가기 위해
그들의 모습을 바꾸고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땅에 떨어져 썩어가기 쉽게 하는 것 뿐이다.
이렇게 인정 많은 인간들도
먼 하늘에서 조용히 내려다 보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구분이 없어
일관되게 보여지진 않겠지만
각 계절의 모습이 함께 존재하는
아름답고, 멋진 모습일 것이다.
인류 존속을 위한
사람들의 자식에 대한 헌신과 사랑은
이 세상 어떤 생명체 보다 강렬하니까.
부부가 사이좋게 지내기위해서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결혼전에는 무엇이든 괜찮고 감당할 수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단점보다는 장점만 보인다.
결혼하고 아이키우고 너무 바빠 그일만 잘 하기에도 벅차서 서로의 다름을 인지하지 못한다.
은퇴해서 자녀들은 모두 자기들의 가정을 이루고, 둘이 함께 지내도 서로 통하는 것은 함께하고, 다른 것은 각자 하면서 보내면 커다란 문제는 없다.
하지만 둘이 자유 여행을 하다보면 문제가 발생한다. 처음엔 서로 다른 것도 참아가며 이삼일 지내다 보면, 서로 피곤해지고 짜증도 낸다. 서로 각자의 여행을 하면 되지만 그것도 잠시지 문제가 생긴다.
이러할 땐, 자유 여행보다는 패키지 여행이 최고다.
한달살기 여행의 꿈도 조금씩 사라져 간다.
최고의 행복은 몸의 컨디션이 좋아, 맑게 생각하고, 다정한 사람과 맛있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11월 1일, 하네다 국제공항은 아직도 코비드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하다. 고객들도 적고, 공항의 상점도 활성화되지 못한 상황이다. 아쉽고, 안타깝다.
To the World, From the World. TWFW.
12월 5일, 겨울임에도 따스한 날씨다.
만석공원의 둘레길에 심어진 벗나무의 잎은 남김없이 떨어져 파란 하늘에 비친 나뭇가지는 햇빛에 비춰져 희고, 청초함의 멋을 부린다.
저수지 주변에 피어, 바람에 흔들리며 어디론가 날아 가기만을 기다리는 갈대는 기다림을 즐길줄 아는것 같다.
어느 상황에서건 나름대로 살아가는 인생은 고귀하고, 아름답다.
갈대의 홀씨가 초겨울의 하늘에서 방황하고 있다.
하지만 바람에 날려가다 내려지는 곳이 그의 보금자리이다. 거기엔 한점의 불만도 걱정도 없다.
인생도 순간 순간을 즐기다 보면, 그 끝이 있을터인데...
삶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본다.
65세가 지나가는 요즈음의 삶의 무게는 무척이나 가벼워진 느낌이다. 딸, 아들은 결혼해서 가정을 잘 꾸려가고 있고, 나와 아내는 은퇴해서 생활하는데 그리 부족함은 없다. 가족들의 건강도 문제없다. 지금이 최상이다. 항상 내 삶의 여정에서 맞이하는 지금이라는 순간이 최상이라고 생각하며 살자.
삶의 무게란 없다. 그냥 짊어지고 가는 것이다. 그것이 각자의 인생이 되는 것이다. (2022. 12. 06.)
인생을 살며 꼭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어떤 날, 우연히 기적처럼 그 사람을 만나면, 서로 헤어져 있던 세월 속에 변한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고, 서로를 향한 마음만은 계속 존재해 있었음도 서로 알아채고, 각자의 남은 인생길을 가기위해 다시 헤어진다. 다시 만날 때도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하길 바라면서...
그리고 마음속엔 그 사람이 전보단 많이 가깝게 있다고 느낀다.
만약 그 사람이 이미 저 세상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어도 헤어질적 모습으로 그를 다시 한번 만나고, 이젠 만날 수 없음에 마음이 울적해진다. 하지만 언젠가 나도 가야할 길이기에 친근감마저 느낀다.
이제 어느정도 살았나 보다.
고향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12월 초, 오후 4시경 햇빛이 따스하게 내려오는 만석공원의 저수지 주변의 벤치에 앉아 호수에 비쳐진 수원의 스카이 라인을 보고 있노라면, 스르르 눈이 감기며 따뜻한 보금자리에 있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포근하고, 안락하고, 감사함에 휩싸인 느낌은 처음이다. 노후의 여유라고나 할까.
부와 젊음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연령과 자신의 상태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하겠지만
50대에선 부, 60대에선 반반, 70대에선 젊음을 선택하지 않을까, 65세인 현 시점에서의 생각이다.
부부의 침대는 적당한 크기여야 한다.
너무 크면 서로의 체온을 느끼기가 어렵고,
너무 작으면 잠자리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부부 관계 또한 마찬가지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