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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1)

한돈수 2024. 5. 7. 05:49

들어가며

나에게로 돌아가는 길

. 어쩌면 지금 우리가 힘들고 지친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내 삶의 고요함을 잃어버리고 살아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현대 문명은 한순간도 우리 영혼을 가만히 쉴 수 없게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여러 심리적인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자기 소외입니다.
내가 나를 데리고 살아가긴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바쁘게만 살아가는 것이지요. 이런 자기 소외가 깊어질수록 안타깝게도 자기 기준을 못 찾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기준, 이 사회가 좋다고 욕망하라고 정해준 것들을 내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러다 보면 심한 경쟁 속에서 남들 쫓아가기 바쁘고, 그 과정에서 또 상처받고, 좌절하고, 우울해지는 것 같아요.
남들이 뭐라 하든 내 식으로 살아 보려는 용기,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갖고 사는 주체성 없이, 남들이 여기저기서 요구하는 것들만 처리해 주기도 너무 바쁜 삶. 어떠신가요?  힘들지 않으신가요?
이번 책에서는 우리 안에 있는 고요함과 만나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예전에는 잘 몰랐던 것들이 밝아지면서 비로소 드러나게 됩니다. 내 안의 소망이라든지, 진정 꿈꾸는 삶의 방향이라든지, 추구하고 싶은 삶의 가치라든지, 혹은 오랫동안 눌러 놓았던 감정이나 기억까지 되살아나 그것들로부터의 치유가 가능하게 됩니다. 또한 마음이 완전히 고요해지면 수행자들이 깨닫고 싶어하는 자기 본성도 밝아지게 됩니다.
'인간의 일생이라는 것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기 위한 여정이다' 라는 소설 '데미안'의 글귀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형태의 삶을 살든 종국에는 나 자신에게 도달하기 위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제 부족한 글이 이 여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이 책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독자님이 내딛는 걸음걸음에 평온함과 깨달음이 함께 하시길 축원드립니다.

                    비구 혜민,  제주 사려니 숲을 걷고 나서



1 장.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나는 못 해요.
. 피나는 노력을 해서 기필코 해내는 것만이 용기가 아니라, 자기는 못 한다고, 할 수 없다고,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용기이다.
행복의 요소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바로 삶의 주도성이 내게 있는가? 하는 점이다. 즉 지금 하는 일을 남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할 때 사람은 행복하다고 느낀다. 내가 삶을 주도할 수 없을 때는, 그게 아무리 남들이 재미있는 것이라 해도, 힘겨운 일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세상 많은 사람이 그 주도성을 잃고 사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못 한다고, 할 수 없다고,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용기내어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미래를 내 스스로가 아닌 옆 사람들을 보면서 결정했기 때문이다

.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며 차분한 성찰의 시간을 갖습니다.
성찰에서 나온 지혜와 숨을 고르며, 모았던 에너지의 힘으로 이번에는 가능성이 있는 방향으로 힘껏 뛰게 됩니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을 어머니인 것 같습니다.

. 그 사람은 그 일을 거절한 것이지, 내 존재를 거절한 것이 아니야.
자기 상황이랑 딱 맞지 않아 그렇게 결정한 것이지, 너를 무시하려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 시간과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해서,
안 되는 일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지는 마세요.
적당한 시점에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지혜입니다.
포기한다고 끝이 아니고, 새로운 길이 또 열립니다.

.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시작을 못 해요.
시작을 못 하면 시간이 갈수록 더 불안해져요.

.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면,
남들의 욕망을 욕망하게 된다.
자기 기준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남의 기준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런 욕망들은,
대체로 비싸거나 경쟁률이 높다.

. 우리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같게 하려고 자신의 4분의 3을 포기한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 자신이 진정으로 뭘 하고 싶고, 뭘 할 수 있는지
혼자 아무리 많이 생각한다고 해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뭘 하고 싶고, 뭘 할 수 있는지는,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과정에서 나에게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 본인의 앞길은 하나씩 하나씩 보이는 것이지, 한꺼번에 쫙 보이지 않아요.
꿈은 자동 판매기에서 뽑으면 나오는 완성품이 아니고, 내가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하나씩 보입니다.

. 운동을 해서 몸이 좀 더 유연해지면, 에너지도 생기고 삶도 재미있어집니다.
세상과 소통하지 않는 단절된 뻣뻣한 몸으로, 생각만 바꾼다고 삶이 변화하지는 않습니다.

. 사는게 힘들어 오늘은 걷는 것조차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걸음을 그냥 반복씩 천천히 걸어요.
천천히 걷다 보면 느껴져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걸음으로 걸으면 괜찮아진다는 사실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걷기에, 지금까지 힘들었다는 것을.


내 속에 있는 두개의 나

. 심리학적으로 보면 내 속에 있는 여러 개의 나들은 크게 두 가지로 모아지는 듯하다. 하나는 내가 되고 싶어하는, 자기 스스로가 원하는 '나의 나'가 있고, 나머지 하나는, 가족이나 사회가 기대하는 '남의 나'가 있다.
즉 나의 나는 내 안에 있는 개인적인 욕망이나, 스스로가 원하는 삶의 방향과 행동 등을 의미한다면, 남의 나는 주위 사람들이나 사회가 나에게 거는 기대나 바람, 요구, 책임이 자기도 모르게 외면화되어 내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에게 이 두 가지의 나가 자리 잡고 있는데, 문제는이 둘의 적절한 조화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 대다수 사람들의 경우 나이가 들면 들수록 결국에는 '나의 나'를 찾고자 한다.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어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

. '남의 나'와 '나의 나' 사이의 적당한 균형을 유지할 줄 아는 것이, 어른으로서 갖춰야 할 자세인 것 같다. '남의 나'에 눌려 눈치 보며 사는 것도 아니지만, '나의 나'만 쫓으며 타인과의 관계를 등안시 하는 것도 아닌, 적당히 그 둘 사이를 조절해 가면서 사는 것이, 내 인생을 즐겁고 건강하게 사는 법이다.

. 사람에겐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와 욕망하는 나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 인생이에요. 욕망하는 나를 남들이 알까 두려워 무조건 억누르거나 수치스럽다고 생각하지 말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 보세요. 받아들이는 순간 편해지고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요.

.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해 하고, 자라면서 나에게 프로그램 된 관념들이 있어요.
그 관념이 나를 항상 부족한 사람, 문제 있는 사람으로 만들고, 그 관념처럼 살지 않는 사람을 보면, 쉽게 비판하면서 자신을 거만하게 만듭니다.

. 미안하지만 그 사람
너를 쭉 무시하고 있을만큼, 너에 대한 관심 없어.
남들이 너를 생각하고 있다고,
너만 착각하고 있는 거야.

. 사람은 자기 안의 어떤 모습이 싫으면,
그 모습을 스스로 바꾸려 하지 않고,
그 모습을 한, 다른 사람들을 바꾸려 한다.

. 고통스럽더라도 익숙한 것과 행복을 가져다 줄 새로운 것, 가운데 사람은 보통 고통스럽더라도 익숙한 것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내 고통에 그렇게 충성할 필요 없어요.
익숙하지 않아 두렵더라도 용기를 내서 행복의 길을 선택하세요.

. 어떤 순간이든 우리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성장을 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거나,
아니면 안정을 위해 뒤로 물러나거나. -  에이부러햄 메슬로

. 스스로가 알아서 변화하지 않으면, 세상이 나를 변화하도록 만듭니다. 물론 후자가 훨씬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내 영혼을 성장시키기 위해 있는 것이지 우리를 괴롭히려고 존재하는 것은 아니에요.

. 산 아래에서는 정상이 잘 보이지만, 막상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 나무에 가려 중간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목표를 세워 앞으로 갈 때도 한창 노력하고 있을 때는,  앞으로 가고 있는지 잘 느껴지지 않아요.
진보가 없다고 느껴질 때 사실 진보가 있습니다.
주저 말고 계속 가세요.

. 크게 성공한 사람일수록
그 사람 명함의 내용은 아주 심플하다.

. 착한 사람보단 단단한 사람이 되고, 단단한 사람보단 지혜로운 사람, 지혜로운 사람보다는 아는 걸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덕을 갖춘 사람이 되어서 이 험난한 세상 잘 헤쳐 나가길...


내안의 고통에 먼저 귀 기울이세요.

. 마음이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의 불안에 머무르려 할 때, 나는 현재 내 몸의 느낌에 집중한다.
지금 내 어깨가 어떤 느낌인지, 혹시 뭉치고 긴장돼 있는 건 아닌지, 지금 내 배와 가슴은 어떤 느낌인지, 주의를 내 안으로 돌려 몸 전체를 한번 쭉 살펴본다.
그렇게 하면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던 생각에서 빠져나와 마음이 현재에 머물게 된다. 아무리 바쁘고 괴로워도 현재의 마음을 온전히 두면 그렇게 바쁘지도, 괴롭지도 않다.
아무리 과거를 후회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을 불안해해도, 사실 마음만 어지러울뿐 어차피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을 바꿀 수도, 일어나지 않은 미래일을 지금 마음대로 조정할 수도 없다.

. 네 존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먼저 봄 햇살처럼 따뜻하게 관심을 주면서 비추면, 내가 표출하지 못했던 아픔의 에너지가 서서히 표현되면서, 풀어지고 그때 비로소 다른 이들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된다.
그 다음 단계는 관계가 소홀했던 이를 찾아가, 그의 아픔을 아주 따뜻한 마음으로 들어주는 것이다. 상대가 오해를 해 나에게 화를 내거나 사실이 아닌 말을 해도, 그것에 즉시 반응해서는 안 된다. 뭉치고 막힌 상대의 에너지가 풀어지기 위해서는, 서운했던 감정을 다 말할 수 있도록, 사랑하는 마음으로 들어 줘야 한다.
이것이 가능해지는 까닭은 내 안의 고통에 먼저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고, 상대의 고통과 나의 고통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 장. 가족이라 부르는 선물

할머니의 별

. 미신이고, 미신이 아니고는 그 시대 가장 지배적인 종교가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지배적인 종교 이외의 종교를 믿으면, 지배적인 종교가 미신이라는 이름하에 다른 종교들을 속박해 온 것이다. 세월이지나 지배 종교가 바뀌면, 우리의 후손들도 지금 우리 기도의 대상을 미신이라고 규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도의 대상은 끊임없이 변할 지언정,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만은, 신들의 이름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거의 매일 새벽마다 장독대에 정화수를 놓고 자식과 손주들을 위해 칠성님께 기도를 올리셨다.

. 세계 평화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가 있을까요? 바로 집에 있는 가족들을 먼저 사랑해 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큰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담아 작은 일들을 할 수는 있습니다.

.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온전히 받아 주면,
자꾸 바꾸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스스로 알아서 변화하려고 합니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먼저 수용하고, 그 마음을 헤아려 주세요.

. 사람은 각자 인생에서 자기만의 춤을 만들어 추고 있습니다. 실패도 상처도 그 춤의 일부분입니다.
힘들까 봐 자식의 춤을 부모가 대신 쳐 주면, 언젠가는 아이가 그 부분을 다시 춰야 합니다.
아이의 춤을 인정해 주세요.

. 죽기 전에 하는 후회 중 하나가 바로 아이들 본인 원하는 대로 살게 놓아 줄 걸이라고 합니다.
아이들 인생을 부모 생각대로 컨트롤하려 했다가, 결국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고 후회를 한대요.

. 부모님을 나의 부모가 아닌,
실수도 할 수 있는 한 사람으로 보며 이해할 때,
우린 비로소 어른이 됩니다.

.살다 보면 아픔을 겪고 있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세상의 파도에 같이 휩쓸려 울고불고 하지 말고, 고요한 평정심을 유지하세요.
나의 침착한 눈빛이 상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소중한 무언가를 잃는 경험을 할 때,
그 아픔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세상을 원망하면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릴 수도 있지만, 나의 존엄성을 지키며 깊은 사랑으로 응답할 수도 있습니다.

.불교 사상 가운데 자비무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서운 세상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상대를 미워하지 않는 자비로운 사랑의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자비한 마음에는 적이 없습니다.

. 자기 존중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남을 똑같이 존중하고 남에게 친절하게 대합니다.
남을 쉽게 무시하고 하찮게 대하는 것은 자라면서 제대로 존중받은 경험이 없거나, 본인 스스로가 지금 하찮다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따뜻한 등불 같은 기억

. 소소하지만 행복한 기억은, 살면서 힘들 때마다 꺼내어 볼 수 있는 우리 영혼의 따뜻한 등불이 되는 것 같다. 우리는 늘 행복할 수는 없지만, 순간순간 행복했던 기억의 힘으로 살아간다.

. 아이에겐 사랑이 가득한 집이,
사람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큰 궁전보다 훨씬 좋습니다.

.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삶을 사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지만, 남의 인생 간섭하는 것은 입만 있으면 된다.

. 이 세상엔 공짜가 없습니다.
아무리 부모 자식 사이도 돈을 주고 받으면, 그 안에는 무언의 기대와 간섭이 딸려 옵니다.
간섭 받기 싫으면 받지 마세요.

. 사랑한다고 말만 하지 말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 주세요.
그러면 상대는 당신의 행동을 통해 사랑을 느낍니다.

. 말만 하고 행동의 변화가 없으면,
그건 상대는 안 보고 자기 감정에만 빠져 있는 거예요.

. 누구를 미워하는 것은, 내 마음속에 그 사람의 모습을 잊지 못하도록 새기는 일.
그래서 다음 생에 또 만나는 인연을 만드는 일.

.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그래도 쉬워요.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 참으로 어려워요.
특히 어렸을 때 받은 상처로, 아직도 분노하는 내 안의 어린 아이를 돌보지 않고, 방치한 나 자신을 용서하고 치유하는 일.
과거 기억을 마음에서 놓아주는 일이 참 힘들어요.


나의 질투, 나의 아픔

. 질투라는 감정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니, 질투는 나와 멀리 떨어져 있거나, 나와 엄청 다른 사람이 아닌 대체로 나와 연관된 사람을 통해 일어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입사 동기의 승진을 질투하지, 나와 인연 없는 빌 게이츠를 질투하지 않는다. 또한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나에게 없는 어떤 부분을 내가 아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을 때 질투가 일어난다.
그 감정의 농도가 옅으면 단순한 부러움으로 그치지만, 진해질 경우 질투는 분노로, 강한 미움으로, 심지어 폭력으로도 전이 된다.
그런데 이런 감정은 상대의 전체가 아닌 일부분만을 보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일 수 있다. 그 사람이 가진 재산이든, 능력이든, 외모든 내가 없는 그 일부분만을 바라보면 질투가 일어나지만, 반대로 그 사람에겐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받는, 남 모르는 스트레스나 괴로움이 있을 수 있다.
즉 내가 없는 그 부분만을 바라보면 나보다 더 행복하고 더 잘난 존재인 것 같지만, 실제로 그 사람의 전체를 바라보면 나와는 다른 양상의 고뇌와 불안이 있지, 내가 상상한 것처럼 마냥 행복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 질투라는 감정을 잘 활용하면 내 능력을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노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하늘은 어떤 사람을 큰 능력의 소유자로 만들고 싶으면, 그 사람보다 잘나 보이는 라이벌을 그에게 보낸다'라는 말이 있다.
질투의 에너지를 분노나 미움의 감정 안에 가둬두지 않고, 나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활용하면, 훗날 질투심을 유발했던 그 사람이 나의 가장 큰 은인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3장 삶을 감상하는 법

나만의 소확행

. 욜로 yolo가 가고, 소확행이 왔어요. '한 번뿐인 인생 지금 즐기자'라는 욜로 트렌드가 과도한 소비로 연결되니 결국에는 생활이 어렵게 되어, 이제는 소확행으로 전환되었단다.
소확행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뜻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랑델한 스섬의 오후'라는 글에서 처음 등장한다.

. 기존에는 행복을 먼 미래나 도달할 수 있는 큰 목표의 성취 이유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소확행은 지금 현재 삶 속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작고도 확실한 행복의 집중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확행을 추구하는 시대는 무엇보다도 과거 산업화 시대를 산 기성 세대가 가지고 있던 획일화된 행복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하면서도 개별적인 행복의 기준을 세운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이전에는 무엇이 행복인지 개인이 정했다기보다는 사회가 이러한 것을 욕망하라고 결정하고 주입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소획행은 행복의 기준을 사회가 아닌 개개인이 정하라고 권한다. 그래서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난 행복들이 무한하게 생겨날 수 있다.

. 소확행을 찾는 요즘 세대는 그렇게 아둥바둥 살지 않아도, 죽기 살기로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어찌 보면 지금 주어진 자기 삶을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태도에 달려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행복은 집이나 자동차 같이 비싸고 걷기 어려운 대상들을 소유하고 나서 느끼는 감정이 아닌, 지금 현재 시간을 내가 어떻게 온전히 쓰는지, 자연의 변화를 감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스스로에게 부여했는지에 달려 있다.

. 행복을 소유의 개념이 아닌 감상의 개념으로 본다면, 소유할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 친구와의 우정, 내 아이의 웃음소리, 음악이 선물하는 평온함, 내가 응원하는 스포츠팀 우승이 다 행복으로 다가옵니다.

. 아무리 돈 많은 부자라 하더라도, 그들의 행복 역시 우리가 말하는 소확행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삶을 감상할 줄 아는 태도를 갖추었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 우리는 삶을 두 가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는 행위 중심의 삶, 다른 하나는 존재 중심의 삶입니다. 행위 중심의 삶은 큰 무언가를 이루어 냈을 때야 비로소 내 삶의 가치가 생긴다고 보는 반면, 존재 중심의 삶은 내 존재 자체가 이미 성스럽고, 지혜롭고, 우주와 연결된 사랑 속에 있다고 봅니다.
행위 중심의 삶은 행복을 먼 미래에서 찾으려 하지만  존재 중심의 삶은 존재 자체가 주는 느낌에서 찾습니다. 연결감에서 오는 행복이나 치유 평화 사랑도 행위 중심이 아닌 존재 중심으로 살 때 일어납니다.

. 숨이 들어오고 나갈 때 몸이 어떤 느낌인지 살펴보세요. 숨이 깊어질수록 몸 안의 모든 긴장은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편안함과 상쾌함, 깨어 있음, 열림을 경험하게 됩니다. 숨을 깊이 느끼는 시간이 많을수록, 어떤 상황이 와도 중심을 잃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 감사하는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 안에는 밝으면서도 평온한 기운이 담겨 있어요.
밝고 평온한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생각은 없이 고요 하지만 깨어 있음이 담겨 있어요.
그래서 감사함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 명상도 잘 해요.

. 욕심을 내려놓으면 무리하지 않고,
무리하지 않으면 건강을 해치지 않고,
건강이 돌아오면 마음이 밝아지고,
마음이 밝아지면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낀다.

. 행복의 척도는 얼마나 성공했는가 보다는, 밤에 숙면을 충분히 취하는가에 있다.
성공하고도 밤에 잠 못 자는 불행한 분들이 세상에는 놀랍게도 많다.

.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어도 자꾸 다른 것을 더 원하면 별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받아들임을 통해 마음이 소란스럽지 않고 평화로울 때 느끼기 때문입니다.

. 많은 사람은 기분 좋게 흥분된 상태를 행복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흥분된 상태 안에는 평화로움이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평화로움에 기반합니다.

. 세상을 사랑할 수는 있어도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집이나 차 옷 같은 것도 아주 잠깐 빌려 쓰는 것이지,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을 그저 사랑하고 감사해하며 잠시지만 누리세요.

. 세상은 우리의 필요를 위해선 풍요로운 곳이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입니다.


미황사에서 아침을

. 혹시 자신만의 안식처가 있나요.
삶이 지치고 힘들 때, 그래서 본연의 자기 모습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혼자 조용히 찾아가 숨을 고르며, 치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 말입니다.
스페인어로는 이렇게 다시 기운을 되찾는 것을 '케렌시아'라고 한다고 합니다. 투우사와 싸우다 지친 소가 투장 한쪽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회복하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우리 사람에게도 인생이라는 전투에서 상처받고 눈물 날 때, 쉴 수 있는 나만의 성소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 사람은 아름다움을 만나면, 복잡하던 마음이 저절로 선하게 변합니다. 미황사에서 보는, 찬란한 저녁 노을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시끄러웠던 마음이 조용해지며, 낙조의 아름다움으로 물들게 됩니다.
바다의 수평선과 듬성듬성 떨어진 남해의 섬들 사이로 사라지는, 태양을 절 마루에 앉아 친한 지인과 함께 보는 느낌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또한 새벽 예불을 마치고 법당에서 나왔을 때, 달마산 위로 피어오르는 안개 구름과 파란 하늘, 처마위에 걸려 있는 달님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거칠었던 사람도 저절로 부드럽고 선해질 것입니다. 아름다운 장소에 있으면 그 안에 있는 것들이, 다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 자존감이 바닥을 쳤을 때, 일부러라도 아름다운 곳을 찾아가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세요. 내 스스로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재발견하실 것입니다.

. 자신의 공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쉬운 일은 집안 정리입니다. 쓸데없는 잡동사니를 버리고, 소수의 좋은 물건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딱 있는 것, 그것이 공간을 가치있고 아름답게 만든다.

. 복잡함 속에서도 단순한 것을 보낸 것이 지혜입니다. 단순한 것이지만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것이 예술입니다.

. 우리는 살면서 재미 말고도, 삶의 의미를 느끼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삶의 의미는 대게 내 개인의 이익이 아닌, 타인을 돕는 과정에서 많이 느낄 수 있어요.
내 삶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때, 지금 내 존재의 의미와 가치가 생깁니다.

. 행복해지고 싶다면, 평소에 반복해서 하는 일들을 다르게 해 보세요.
우리 마음은 변화에 민감해서, 긍정적인 새로움을 경험할 때 행복해 합니다.

. 행복을 단순히 '즐거운 느낌'으로 정의하면, 우리의 삶은 행복하지 않은 시간이 너무 많아요. 고대 그리스에선 행복의 정의를 '자신의 가능성을 발현하기 위해 노력할 때 느끼는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자신의 가능성을 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인가요? 그 시간이 모두 행복입니다.

. 남에게 굳이 의지하지 않고도, 혼자 시간을 즐겁게 보낼 줄 아는 사람이 자유로운 사람이다.
시간만 많다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하던 일이 잘 안 되는 순간이 오면, 눈 앞의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해 보세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작은 일들이고, 그것들이 계속해서 쌓이면 큰 일이 됩니다.


구하는 마음이 쉴 때

.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이 그렇다. 오랫동안 원했던 목표를 이루고, 꿈꾸던 새로운 세계에 입성하고 나면, 모든 문제가 다 사라질 것만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가 않다.    그 세계는 그 세계에 맞는 새로운 규칙과 계급, 미묘한 차별이 기다리고 있다.

. 하나를 이루고 난 후, 다른 더 큰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행복을 이런 식으로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찾아오는 느낌이라고만 정의를 내리면, 평소에는 행복할 수 없다는 말인가 하는 의문이 된다.
더불어 성취 후의 행복한 느낌이 오래가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  더 크고 더 좋아 보이는 새로운 목표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그 새로운 목표를 위해 쉴 틈 없이 계속 달리게 된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기 원하는 행복이나 여유, 평화로움은 계속해서 뭔가를 구하는 마음이 쉴 때 비로소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 행복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대상들을 계속해서 바꾸어가며, 잠시 동안의 마음의 쉼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하기 보다는, 마음 자체를 쉬게 만드는 명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평화로움이나 만족감은 결국 물건이 아닌 아무런 얽매임 없는 마음이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 목표를 성취한 후에야 비로소 마음의 여유가 생겨, 실수 있을 것 같다는, 그 생각을 내려놓자.
명상을 하듯 좀 더 현재에 집중하고, 지금에 감사하면, 마음이 한결 덜 바쁘고, 해야 하는 일의 과정도 즐기면서 할 수 있다.
행복하려면 먼 미래가 아니고, 지금 여기서 행복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구하는 마음이 쉴 때 생각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구하는 마음이 쉴 때 행복과 여유, 평화로움이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4 장. 우정의 여러가지 면

삶에 힘이 되는 존재

.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가족이라면,
친구는 내가 선택한 가족이다.

. 혼자 있을 때보다 사람과 있을 때, 웃을 확률이 30배 더 증가한대요.
정말로 웃긴 말 때문에 웃는 경우는 15%에만 해당하고, 나머지는 앞 사람의 감정에 공감할 때 웃는대요.
웃음은 관계를 가깝게 하는 접착제입니다.

. 어떤 다른 목적 없이, 그냥 만남 자체가 목적인 만남.     만남의 다른 이유가 없을 때,
사람 사이에 숨어 있던 행복이 미소를 짓습니다.

. 세상의 친목 모임은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그 자리에 없는 남의 이야기만 주로 하는 모임과
그 자리에 참석한 자기들의 속 이야기를 하는 모임.
후자가 훨씬 영양가가 있다.

. 다른 사람의 흉이나 단점을 말하는 순간,
내 안에 존재하는 그와 똑같은 단점이,
말하는 도중에 더 강화됩니다.
이 간단하고도 중요한 사실을 잊지 마세요.

. 남이 고집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나에게도 고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고집이 없으면 상대는 그냥 결단력과 추진력이 좋은 사람으로만 보여요.

. 세상에서 가장 하기 쉬운 일 중 하나는 남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스스로의 잘못을 살피는 일이다.

. 우리는 '그는 그런 사람이다'와 '그가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사이를 헷갈려 한다.
특히 본인 바람을 담은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가 '그런 사람일 것이다'로 종종 인식된다.
그렇게 혼자 기대하고 또 혼자 실망한다.

. 그에 대해 잘 모를 때는, 내 마음대로 그를 향해 자기 투사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점점 알아 갈수록, 그가 내 기대와 다르다는 걸 알고 실망하지요.
그런데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내 생각 안에서의 일이었을뿐, 그가 자기를 좋게 봐 달라고 요청한 일도, 의도적으로 실망하게 만든 일도 아니었어요.


나보다 그를 더 생각한 하루

. 우리가 살면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내 문제점만을 지나치게 반복적으로 크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 프레임 안으로 나를 더 견고하게 가두고,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만든다.
이럴 땐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는 것보다, 남에게 아주 작은 친절을 베풀어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내가 쓸모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의 작은 도움으로 상대가 잘 되는 모습을 보면, 그대 자존감도 올라가고 세상과의 연결 감도 증가하게 된다.

.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좀 아프면 아픈 대로, 내 사정에 맞게 조금씩이라도 남을 돕는 실천이 결국 우리 스스로를 치유하고 좀 더 완성된 방향으로 이끈다.

. 행복은 내가 도움을 준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 행복은 나에 대한 고민을 줄이고, 다른 사람의 안위를 진정으로 걱정하고 도와줄 때 커집니다.

. 사람의 업적을 평가할 때는, 본인이 평생 어떤 일을 성취했는지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일들을 성취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었나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 용서를 구할 때는 진정성이, 말 속에 묻어 나와야 합니다. 정말로 솔직한 사과는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 인간적으로 이해가 되어, 나도 그의 입장이었다면 어쩔 수 없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 자신의 것이 세상에서 최고라고 하는 사람은, 대개 자기 우물 밖에서의 경험이 많지 않습니다.
세계를 여행하고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은, 자신의 것이 세상에서 최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자기 자신에게는 최고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 치사하면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내 힘으로 하겠다 마음먹으세요.
시작이 좀 초라하고 금방 뭔가가 막 이루어지지는 않아도, 그 길로 가는 것이 맞습니다.

. 힘이 있다고 가진 힘을 100% 다 써 버리면, 결국엔 큰 화근이 되어서 돌아온다.
지혜로운이는 싸울 때도 3분의 2의 힘만 쓰고, 상대의 마지막 체면은 지켜줄 줄 안다.

. 우리가 다른 사람의 불행까지 다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상대를 따뜻하게 대하면서도 넘지 않아야 하는 심리적 선을 지키세요. 그를 돕다가 내가 점점 불행해지면, 처음이 선의가 원망으로 변합니다.

. 사랑의 마음을 일부러 만들려고 하지 말고, 단지 나와 상대 사이에 있는, 내 생각의 장애물을 내려놓으려고만 하세요.
그러면 사랑의 본성은 저절로 들어납니다.


봄날은 간다.

. 인도의 성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자기 성찰은 관계라는 거울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했다. 즉 다른 사람과 어떤 부분에서 부딪힐 때, 내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난다는 것이다.
인도의 또 다른 스승 오쇼 라즈니쉬는 인간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우리 마음을 바위처럼 단단하게 만들어서 어떤 상처도 받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 반대로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대면할 용기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처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민감하게 느끼면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수용하고, 지혜롭게 대처해 나갈 때, 비로소 우리 영혼은 성숙해진다.


5 장.  외로움에 관한 생각

우리가 외로운 이유

. 인간 중심 상담의 창시자인 미국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우리가 외로운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줬을 때, 상대가 수용해 주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마음이 문을 열고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만약 그랬을 때 상대가 나를 따뜻하게 지지해 주는 것이 아닌 내 연약하고 부족한 부분을 평가하고 상처 내고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떠벌리고 다닐 수도 있기 때문에 섣불리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상대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가면을 쓰고 사람을 대한다 진짜 자기 모습을 감춘 채 사회적 시각에서 봤을 때 비난받지 않을 수준에서 안전하고 피상적인 만남만을 가지는 것이 다 그럼 만남은 깊은 유대감이나 연결감을 느끼게 하지 못하고 누굴 만나도 마음에 공허함만 남는다.

. 칼 로저스에 의하면 부모로부터 안전한 분위기에서 수용적인 지지와 긍정적인 관심을 받지 못한 경우, 아이들에게 심리적인 벽이 생긴다고 한다. 그 부모 역시 자신의 부모로부터 존중받아 본 경험이 없으면, 자신도 모르게 자기 아이의 생각이나 결정을 마음대로 평가하고 컨트롤 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부모가 원하는 대로 아이가 행동했을 때만 인정하고 칭찬해 주면, 아이는 언제부턴가 자기 스스로의 느낌이나 결정을 신뢰하기보다는 부모의 바람이나 지시를 더 살피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란 아이는 부모 앞에서 자기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고 억누르는게 일상화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 감정을 숨기고 모든 것이 문제 없는 듯 가면을 쓰고 행동한다.

. 사람은 살면서 다양한 역할을 합니다. 직장 상사로, 대학 후배로, 아내로, 사촌 언니로, 학부모로, 그런데 우리가 그 사람의 대해 아는 것은 한두 가지 역할뿐입니다.
그래서 잘 아는 사람이라 해도 사실은 잘 모릅니다.

.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운 이유는 상대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보다, 상대에게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에게 내 말을 좀 들어 보라고 하지만, 서로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려고 해 결국엔 더 멀어집니다.

. 우리가 외로운 까닭은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고, 내가 그들을 향한 마음을 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용기를 내 마음을 열고 말을 걸어 보세요. 서로의 공통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 입니다.

.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불안의 깊이만큼 남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돌출 행동을 합니다.
특히 관계에서 나의 어떤 말이나 행동이 그의 깊은 불안을 자극하면, 갑자기 화를 내거나, 그날 이후 잠수를 타거나, 나와 절연합니다.

. 우리 마음은 행복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조건이라는 틀을 만듭니다.
내 주변 상황과 사람이 그 틀에 딱 맞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그 틀이 있는 한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내가 붙인 조건, 내가 만든 틀이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 외로움과 홀로 있슴은 차이가 있습니다.
외로움은 혼자 있지만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상태이고, 홀로 있음은 혼자지만 혼자 있는 것이 평온한 상태입니다.
똑같은 상황이지만 마음 상태에 따라, 외로움은 불행하다고 느끼고, 홀로 있음은 편안하다고 느낍니다.

. 혼자 있는 것을 즐기면 홀로 있음이고,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똑같은 상태가 곧바로 외로움으로 변합니다.

. 우리는 심심한 것을 두고 외롭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심한 것을 달리 보면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할 일이 없다고 무조건 외롭다는 말을 지지는 마세요.
우리의 괴로움은 주어진 현실이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고, 그 현실에 대한 내 마음의 해석이 가져옵니다.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2)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