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2



제 2차 세계 대전
. 자본주의의 특성인 공급과잉의 문제가 대공황을 불러 왔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뉴딜 정책을 통해 자본주의를 수정했다.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지만, 수정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 수정 방법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다. 반면 러시아는 공산주의를 선택하며 자본주의를 폐기했다. 자본주의에 태생적인 문제가 있는데, 문제 있는 경제 체제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독일은 군국화의 길을 선택했다.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전쟁 배상금을 물지 않을뿐만 아니라 국가간 무역에서 독점적 위치를 점유할 수 있다. 혹시 패배한다 하더라도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전쟁은 막대한 양의 수요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의 공급과잉 문제를 일시적으로나마 해소한다. 독일에는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패배하거나 어쨌든 현재의 최악의 상황보다는 단기적으로 이익이 되므로 전쟁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독일은 자본주의를 어떻게 한 것인가? 독일은 자본주의를 유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공급 과잉이라는 특성은 필연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으로 귀결되었다.
. 제2차 세계 대전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치러진 세계적 규모의 전쟁이었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추축국이 되어 전쟁을 일으켰고, 이해 대항해서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중국 등 여러 나라가 연합국을 형성했다.
. 중세의 일본에는 천황이 존재했으나 실질적인 힘은 지방의 영주라고 할 수 있는 막부에 있었다. 막부는 군부 정권으로 통치권자인 쇼군이 통치했다. 중세의 끝인 19세기 중엽이 되면, 일본은 미국과의 통상 조약을 시작으로 근대화에 박차를 가했다. 이러한 근대화를 메이지 유신이라고 한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일본의 막부 체제가 종식되고, 천황에 의한 중앙집권적 통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열강들의 기술, 문화, 제도를 빠르게 받아들이며 국가 주도의 산업화가 본격화되었다.
산업화는 자본주의를 낳았고, 자본주의는 공급 과잉의 문제를 발생시켰다.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인 식민지가 필요했다.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를 대상으로 1894년에 청일전쟁, 1904년에 러일전쟁을 일으켜 타이완, 조선, 사할린을 식민지로 얻었다. 그러나 발전을 계속하던 일본도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영향으로 경제 위기에 봉착했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더 큰 시장인 대륙으로의 진출을 꾀했다. 하지만 중국은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의 세계 열강 모두가 꿈꾸는 광활한 시장이었고, 이에 따라 일본은 이들과 대립하며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 독일과 일본이 추축국으로 동맹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국가의 궁극적인 목적이 같았기 때문이다. 과도한 공급량을 해소하기 위한 식민지의 확보 그리고 무역 협정에서의 국가적 우위. 그렇다면 연합국은 어떤 목적으로 전쟁에 대응했는가? 정의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정의와 자유를 위한 도덕적인 전쟁이란 없다. 자국의 시장인 식민지를 지키고, 독일, 일본과의 무역 협정에서 계속 우위를 점하기 위해 대응한 것이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식민지를 얻으려는 국가와 식민지를 지키려는 국가 간의 전쟁이 제2차 세계 대전이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냉전 시대
. 전쟁이 끝나고 세계는 새롭게 재편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이 세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공동의 적이 사라지자 이질적인 체제로 대결할 수 밖에 없었다. 서로 판이하게 다른 경제 체제 때문이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체제를 중심으로 세계는 팀을 나누어 재편되었다.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국가로는 미국, 서유럽, 일본, 남한 등이 있고, 공산주의 국가로는 소련, 동유럽, 중국, 북한 등이 있다.
이 냉전 시대는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식된 1945년부터 소련이 개혁과 개방을 외치며 해체된 1991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 공산주의 국가가 자본주의 국가와 무역 거래를 하지 않고, 적대적인 관계를 갖는 것은, 공산주의 체제가 생산 수단을 독점한 자본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 확보가 필수적인 자본주의의 입장에서는, 자본주의와 무역 거래를 하지 않는 공산주의 국가가 늘어난다는 것은 시장이 축소를 의미한다. 시장의 축소는 수요량의 감소를 의미하고, 수요량의 감소는 생산 중단 즉 공항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공산주의 국가의 존재 자체가 자본주의의 위협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더해서 이렇게 존재만으로도 위협적인 공산주의가 체제의 우월성을 자랑하며, 영역을 확대하고 있었다. 더 무서운 것은, 하나의 국가가 공산주의 사회로 변하는 것이, 다른 공산주의 국가가 침입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 내부에서 발생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자본가들을 제거하고, 그들 스스로가 생산 수단을 공유하면 그것이 공산주의 혁명이었던 것이다.
. 국가라는 개념은 신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지배 체제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특히 애국에 대해 강요함으로써 지배자들을 편리하게 한다. 그래서 애국은 국가 차원에서 장려되고 교육된다.
그러나 국가에 대한 요청은 자본주의만의 특징은 아니다. 신을 요청할 수 없는 모든 지배 권력은 애국을 장려한다. 합리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혹은 지적 대화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신과 국가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신과 국가에 대해 객관적으로 사고 한다는 것이 이들의 존재를 부정해야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신과 국가의 객관적인 의미를 초월해서, 사회, 정치적으로 과장되고 포장된 의미가 나에게 강요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냉전은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대결과 갈등을 말한다. 우리가 물은 것은, 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대결해야 하는가였다. 그리고 그것이 자본주의의 특성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본주의는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시장이 필요한데, 공산주의가 확장되는 것은 곧 시장의 축소를 의미하므로 자본주의에 위협적이었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이 시장 확보를 위한 전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냉전의 위기도 시장 확보를 위한 경쟁이 본질적이었던 것이다. 또한 공산주의 이념 특성이 자본주의를 내적으로 붕괴시킬 가능성을 가진 까닭에, 자본가는 이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은 세계를 떠돌며 자본가와 자본주의 국가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미국과 소련의 대결 국면은 소련의 경기침체와 체제의 비효율성이 드러나며, 급격한 전환을 맞이했다. 소련의 연방들은 더 이상 소련이 리더십을 신뢰하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소련은 개혁과 개방 정책으로 선회했고, 1991년 12월 26일, 마침내 소련은 러시아와 15개의 신생공화국으로 해체되었다. 냉전은 종식되었다. 미국과의 화해와 긴장 완화의 시기가 찾아왔다.이를 데탕트라고 한다. 그리고 공산주의 체제의 몰락은 자본주의 독주 시대가 찾아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신 자유주의의 탄생
. 공산주의가 없는 세계에서, 자본주의는 빠르게 확산되어, 1991년 이후 30여 년간 세계는 자본주의화되었다. 하지만 냉전 이후의 자본주의는 냉전 이전의 자본주의와는 성격이 달라졌다. 냉전 이전의 자본주의는 대공황 이후 정부의 시장 개입을 강조하는 후기 자본주의 체제였다. 반면 냉전 이후의 자본주의는 정부의 개입을 비판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비판하고, 자유시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신자유주의라고 한다.
.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는 신자유주의라는 매우 소비적이고, 시장 중심적인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매우 독특한 세계다. 신자유주의 체제에 살지 않았던, 과거의 사람들은 우리와는 너무도 다르게 살았을 것이다. 다른 세계에서 살았던만큼 지금이 우리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고, 생활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세계가 매우 독특한 세계임을 아는 것, 내가 사는 세계가 지금까지의 인류 전체가 살아왔던 평균적이고, 보편적인 삶의 모습은 아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이 독특한 세계에 발 딛고서 있는 독특한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왜곡된 세계에 서 있는 왜곡된 나를 이해하는 것, 이것이 지적 대화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이다.
. 역사를 움직이는 핵심 개념은 두 가지다. 생산 수단과 공급 과잉, 이 두 개념이 역사를 움직여 왔다. 생산 수단과 공급 과잉은 공통점이 있다. 두 가지 모두 경제적 관념이라는 것이다. 역사를 움직여 온 핵심이 경제인 것이다. 지적 대화를 위한 두 번째 여행지가 경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경제는 하나의 학문 분과라기보다는 역사, 정치, 사회, 문화 등의 다양한 사건들을 규정하고, 결정하는 중심 토대라고 할 수 있다.
경 제
네 개의 경제체제
. 경제 파트에서는네 개의 경제 체제를 구분한다. 초기 자본주의, 후기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공산주의가 그것이다. 이들은 하나의 기준에 따라 단순하게 구분된다.
기준은 정부의 시장 개입 정도이다.
시장의 자유와 정부의 개입
. 오늘날의 시장이란, 상품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모든 영역을 의미한다. 더 단순화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시장은 사회 전체나 다름없다. 사회 안에 시장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추상적인 사회를 가능하게 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오늘날 시장은 사회 전체다.
. 이 시장 안에는 두 가지 경제 주체가 있다. 그것은 개인과 기업이다. 두 주체가 시장을 구성한다. 둘은 친하다. 그런데 이들에게 간섭하려는 세 번째 사회 주체가 있으니 그것이 정부다. 시장과 대립하는 정부는 국가의 통치 기구를 말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을 포함하는 통치 기구의 총칭이겠으나, 이렇게 복잡한 개념으로는 그것이 시장과 맺는 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정부의 의미를 시장에 간섭하기도 하고, 간섭하지 않기도하는 기능으로 한정해서만 사용한다.
. 정부의 개입 방법은 크게 세금과 규제로 나눌 수 있다. 정부는 세금을 통해서 시장에 개입한다. 그리고 세금의 양을 조절함으로써 시장 활동을 조율한다. 세금이 늘어나면 정부는 재정이 안정되고, 이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복지를 실현한다. 반면 세금이 줄어들면 정부의 재정은 축소되고, 복지 역시 축소된다. 세금과 복지는 비례한다. 이 두 가지는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있다.
. 경제 정책은 두 가지가 가능하다. 시장이 자유를 추구하고,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법이 있고, 반대로 시장이 자유를 축소하고 정부의 개입을 강화하는 방법이 있다. 이때 정부의 개입이란, 직접적으로 세금을 의미한다. 시장의 자유가 확대된다는 것은 정부의 개입이 줄어드는 것 즉 세금이 줄어드는 것을 말한다. 반면 정부의 개입이 확대된다는 것은 시장의 자유가 줄어드는 것 즉 세금이 늘어나는 것을 말한다.
세금과 복지의 확대와 축소는 경제적 활성화와 침체를 가져오고, 사회적 갈등과 안정에 영향을 미친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 부에는 두 가지가 있다. 생산 수단과 인형 생산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는 생산 수단의 개인적 소유를 인정하는지 여부가 된다. 자본주의는 생산 수단, 잉여 생산물, 모두를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체제다. 공산주의는 잉여 생산물은 개인이 소유할 수 있지만, 생산 수단은 개인이 소유할 수 없는 체제다.
초기 자본주의 후기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 초기 자본주의는 시장의 자유만이 존재하는 경제 체제다. 그리고 후기 자본주의는 초기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며 등장했는데, 시장의 자유를 축소하고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제 체제다. 다음으로 신자유주의는 후기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등장했고, 정부의 개입을 축소하고 시장의 자유를 확대하려는 경제 체제다. 마지막으로 공산주의는 시장의 자유는 인정하지 않고, 정부의 강력한 개입과 통제만이 존재하는 경제 체제다.
시장의 자유를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초기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닮았고, 정부의 개입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후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닮았다.
초기 자본주의
. 초기 자본주의는 이름 그대로 가장 초기에 등장한 경제 이론이다. 시기적으로는 자본주의가 태동한 산업혁명기 즉 근대에 시작되었다. 초기 자본주의 이론을 정립한 대표적인 인물은 18세기의 애덤 스미스로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이 사회 전체의 부를 증진시킨다고 보았다.
국가가 시장에 간섭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아도, 시장은 스스로 가격을 조절하며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애덤 스미스가 말한 자유시장의 자율적인 조정 능력이다. 애덤 스미스는이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표현했다. 정부의 개입이 없는 자유시장에 대한 신뢰, 이것이 초기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상식적인 것처럼 보인다.
. 자본주의는 자신의 능력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부를 약속한다. 하지만 능력 있고 노력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미 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도 초기 자본주의를 매우 선호한다. 다시 말해 이미 자본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능력있고 노력하는 사람일지라도 부를 소유하지 못했다면, 초기 자본주의에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 초기 자본주의의 또 다른 문제는 노동 환경이 열악해진다는 것이다. 결국 가격 결정의 모든 희생은 노동자들이 감수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노동자들만이 희생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극히 적어지면, 소비력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소비자의 소비가 줄어들면 수요는 더 줄어들 것이다.
초기 자본주의는 과열 경쟁에 의한 소비 위축과 공급 과잉의 문제로 인해 필연적으로 경제 대공황이라는 시장 실패 상황을 몰고 왔다.
후기 자본주의
. 후기 자본주의는 초기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수정하면서 등장했기에 수정 자본주의라고도 한다. 20세기에 활동한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가 제시했다. 그는 초기 자본주의가 자기 조절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것은 잘못된 생각임을 지적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시장의 문제점을 해결할 것을 제안했다. 정부가 세금을 통해 부를 재분배함으로써 자본에 의한 독점을 막고, 소비가 활성화되게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 우선 공공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해서, 고용된 노동자들이 소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다음으로 세금을 적극적으로 징수해서 정부의 재정을 늘린다. 그리고 늘어난 자금을 공공 사업의 자금으로 재사용하여 경제의 선순환을 이룬다. 이 과정에서 부가 재분배되고 빈부 격차가 줄어들며, 정부의 재정이 늘어난다.
시장 실패로 발생했던 공황은 정부의 개입으로 점차 안정되어 갔다. 이것이 바로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후기 자본주의의 모습이다.
정부는 세금을 높이고, 다양한 규제를 수행함으로써 시장 실패를 막고, 거대 자본이 산업을 독점하는 것을 견제하며,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 노동 환경을 개선했다. 발전과 성장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적 소외계층을 보살피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시대가 온 것이다.
. 후기 자본주의는 대공황 때 시작되어 냉전 시대를 거쳐 소련이 붕괴하기 전까지 이어졌다. 이로 인해 미국은 소련과의 체제 경쟁에서 자본주의를 보호할 수 있었다. 소련의 공산주의는 미국의 큰 부담이 되었는데, 공산주의가 노동자의 권리를 국가의 최고 가치로 삼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자본가들에게는 공산주의가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위협하는 악마로 보였을 것이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미국의 자본가들은 노동자와 소외계층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불만을 갖지 않게 하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배부르고 편하게 해 주는 것, 따라서 당시의 자본주의는 노동자와 소외계층의 권리와 이익을 충분히 고려하는 후기 자본주의의 모습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후기 자본주의의 등장은 역사적 상황과 맥락을 같이 한다.
. 후기 자본주의도 문제점을 갖고 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다. 첫 번째가 경기 침체와 장기 불황이고, 두 번째가 불황과 함께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 플레이션이다.
이러한 문제는 정부가 재정 지출을 통해 시행한 공공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지 못했고,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과도하게 시장에 개입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시장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데, 정부의 규제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결국에는 시장의 상황이 비정상적으로 왜곡되었고, 그 결과 사회 전체의 침체가 발생한 것이다.
. 초기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등장한 인간의 얼굴을 한, 후기 자본주의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경직된 노동시장을 형성했고, 이로 인한 불안과 경기 침체를 가져오는 등의 문제를 일으켰다. 이를 정부 실패라고 한다. 후기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세계는 차라리 정부 개입이 없었던 초기 자본주의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렇게 정부 실패를 비판하며, 초기 자본주의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체제가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
. 초기 자본주의와 후기 자본주의에 이어 세 번째로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시카고 학파가 주도했다. 이들은 1970년 이후부터의 장기 불황의 원인을 수정 자본주의가 추구한 과도한 정부 개입으로 보았다. 이들은 국가 권력에 의한 시장 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자율성 보장과 탈 규제를 강조했다. 이렇게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을 거부하는 모습은 초기 자본주의의 모습과 닮았다. 결과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신자유주의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 제재로 자리 잡고 있다.
. 세금과 규제가 줄어든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어쩔 수 없이 거대 자본력이 독점으로 산업을 이끌게 된다. 자본은 자신보다 작은 자본을 종속시키는 속성을 갖는다. 이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어 보이지 않는다.
신자유주의가 최고의 경제 체제일 수는 없지만, 그나마 인류가 찾아낸 최선의 경제 체제일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시장이 독점과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경제가 성장하고 발전하기 때문이다.
. 어떤 사안이 복잡해 보일 때, 그것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사안으로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손해를 보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잘 이해하는 방법은 신자유주의를 통해 이익을 얻는이가 누구이고, 손해를 입는이가 누구인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공산주의
. 생산 수단을 소유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소유자가 부를 축적할 수 있게 한다. 이에 따라 노동자와의 소득 격차는 계속 벌어진다. 다음으로 소유자가 노동에 직접 참여하지 않게 한다. 생산 수단의 소유자는 직접적인 노동이 요구되지 않는다.
노동자는 경쟁을 통해 다른 노동자를 이길 수는 있지만 자본가를 이길 수는 없다. 노동자가 열심히 일을할수록 자본가는 그만큼 더 부유해진다.
. 자본가에게서 생산 수단을 빼앗아 노동자가 그 생산 수단을 직접 소유하는 사회, 이것이 공산주의 혁명의 목표이다. 이러한 생각은 노동자들을 감동시켰고, 사회를 바꾸기 위한 역사적인 실험이 실제로 진행되었다.
.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공산주의는 대략 마르크스 주의를 칭한다. 여기서 잠시 마르크스의 생각에 대해 알아보자. 그는 역사를 계급 간의 투쟁으로 설명하고, 그 갈등의 끝은 모든 사람이 평등해지는 이상 사회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독일의 철학자 헤겔의 변증법에서 기인한다.
. 변증법은 정,반,합의 3단계를 거쳐서 전개되는데, 쉽게 말해 세상에서 정상적인 것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그에 모순되는 반대되는 것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상적인 것과 반대되는 것은 서로 모순됨으로 공존하지 못하고 투쟁하게 된다. 그리고이 투쟁의 과정을 거쳐 두 가치를 모두 극복한 종합이 새롭게 등장한다. 하지만이 종합도 결국 정상적인 것이 되고, 필연적으로 모순 관계의 반대되는 것을 만들게 된다. 이러한 정,반,합의 과정은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하나의 방향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것이다.
. 노동자 입장에서 매력적이며 설득력 있는 마르크스 주의는, 20세기 초에 러시아와 동유럽, 아시아 일대를 휩쓸었다. 실제로 노동자들은 힘을 합쳐 자본가들을 몰아내고, 생산 수단을 국유화했다. 이제 생산 수단은 개인이 아닌 국가가 관리했다. 모든 사람은 생산 수단이 없는 평등한 관계가 되었다.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역사적인 실험은 자본주의와 대결하며 소련이 붕괴되기전까지 이어졌다.
. 공산주의의 실패의 원인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첫 번째로 인간 본성에 대한 과도한 신뢰를 근본 원인으로 지적하는 견해가 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를 추구할 것 같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그러한 평등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본능적으로 계급과 서열을 중시한다. 다수가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라도 소수가 불평등을 추구할 때, 그 사회는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 공산주의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평화롭게 살고자 한다는, 인간 본성에 대한 낙관적이고 불가능한 전제에서 시작했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해석은 조금 더 근본적이다. 그것은 생산 수단의 국유화가 일으키는 문제점에서 찾을 수 있다. 생산 수단을 개인이 소유하지 않고,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국가라는 개념이 실체라기보다는 추상적인 관념에 가깝기 때문이다. 국가라는 구체적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국가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머릿속에 관념으로 존재한다. 그렇게 관념으로서 존재하는 국가가 생산 수단을 소유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서 국가가 생산 수단을 소유한다고 해도, 실제로 그것을 소유하고 결과물을 분배하는 존재는 지극히 구체적인 사람이다. 즉 국유화된 생산 수단을 관리하는 소수가 권력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마르크스 주의가 추구하는 모든 노동자에 의한 프로레테리아 독재는 실현되지 않는다. 국가의 이름으로 국가 전체의 생산 수단을 통제하는 절대적 권한을 갖는 독재자가 필연적으로 탄생할 뿐이다.
세 번째 원인은 정부 주도 계획 경제의 실패에 있다. 공산주의는 정부가 전적으로 주도해서 경제 전체를 이끌어 가는 체제이다. 복잡하고 예민한 시장의 상황을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정부가 통제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양한 위험을 수반한다. 판단의 실수, 예측 불가능한 변수 등 계획에서 벗어난 문제 발생에 대처하기 어렵다. 이러한 중앙집권적 통제는 시장의 왜곡과 비효율을 낳아 정부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네 번째 원인으로는 자본주의의 방해를 들 수 있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과제는 공급량을 해소하는 것이고, 소비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확대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공산주의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이 될 수 없다. 그것은 공산주의가 기본적으로 자본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폐쇄적인 국가 운영을 하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공산주의 국가의 확산 자체가 자본주의 국가들의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는 체제 경쟁과 군사 대립을 지속했고,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의 효과적인 공격과 방해가 공산주의 국가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구분
.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가장 적절한 구분 방법을 추려 보면 세 가지 정도가 된다.
첫째, 혁명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른 구분이다. 이에 따르면 사회,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 중심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주체를, 노동자 스스로로 보는 입장을 공산주의라 한다. 반면 노동자는 실제로 스스로를 극복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엘리트 계급 또는 부르주아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내려놓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사회주의라 한다. 이는 누가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입장 차이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구분하는 것이다.
둘째, 수단과 목적의 관계로 구분하는 방법이다. 이에 따르면 궁극적인 목표로서의 공산주의 사회는 노동자가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지키며 독재를 하는 사회다. 그런데 현재 자본주의 체제에서 하루아침에 노동자 중심의 사회로 급격히 변화될 수는 없다. 따라서 과도기적 단계로서 국가와 정부를 대리하는 소수의 정치 엘리트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가 필요한데, 이를 사회주의라 부르는 것이다. 이 구분 방법은 공산주의를 궁극의 목표로, 사회주의를 과도기 단계로 설정함으로써 두 체제를 구분한다.
셋째, 내포의 관계로 보는 것이다. 사회주의를 국가가 주도하는 계획 경제라는 넓은 개념으로 파악하고, 공산주의는 그 중에서도 특히 노동자가 주도하는 계획 경제라는 측면에서 사회주의에 포함되는 개념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 사회주의가 조금 더 온건한 방식으로 사회를 개혁하려 한다면, 공산주의는 급진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사회 혁명을 꿈꾼다는 차이가 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일반적으로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되며, 공통적으로 정부 개입에 의해 국가 주도의 경제 발전이 추진되는 사회라는 유사점이 있다.
역사와의 연계
. 근대는 산업화를 통한 자본주의에서 시작되었다. 자본주의는 공급 과잉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공급 과잉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민지 경쟁이 치열한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제국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마무리되었다.
이후 다시 발생한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격 경쟁이 치열해졌고, 이는 대공황으로 이어졌다. 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책이 펼쳐졌는지 세 국가를 통해 알아보았다. 미국은 자본주의를 수정해서 정부가 개입하는 형태를 띠고, 러시아는 자본주의를 폐기하고 공산화 했다. 마지막으로 독일이 전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시대는 현대로 넘어갔다. 이후 세계는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냉전을 이어갔다. 90년대 초에 소련이 붕괴되면서, 세계는 미국 중심의 새로운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 초기 자본주의는 중세가 끝나고, 근대의 시작과 함께 등장 하였다. 정부가 시장을 관망하고 있고, 시장의 자유가 완벽히 보장되는 모습을 하고 있으니, 독과점과 빈부격차 문제가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규제가 없어 노동자의 인권이나 생존권이 위협받는 일이 되어지기도 했다.
이후 공산주의 이론이 열악한 노동 환경과 착취를 거부하며, 러시아, 동유럽, 아시아를 중심으로 등장했다. 공산주의는 초기 자본주의를 강력히 비판하면서 등장한 까닭에 초기 자본주의와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공산주의의 도전에 맞서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문제점을 극복할 필요가 있었다. 후기 자본주의는 도전 받고 있는 자본주의의 다양한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며 등장했다. 우선 독과점과 빈부격차 등 초기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정부 개입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다음으로 대공황으로 인한 불황을 공공 사업 추진으로 해결했다. 또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로 노동자의 권익과 노동 환경을 크게 개선함으로써 공산주의의 공격에 대응했다. 이처럼 후기 자본주의는 정부의 적극적 개입으로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했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과 냉전 시대를 거치며 경쟁상대였던 공산주의가 무너지자 자본주의는 계속해서 인간적인 얼굴을 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정부의 개입으로 시장이 왜곡되고 효율성이 낮아지는 문제가 만연해 있었다. 이러한 후기 자본주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초기 자본주의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다. 신자유주의는 공산주의와 후기자본주의 강력한 정부 개입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까닭에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는 자유로운 시장 경제를 추구했다.
사회민주주의
. 사회 민주주의 체제는 사회주의에 뿌리를 두지만, 어느 정도 시장의 자유를 용인하는 체제이다. 시장의 자유를 인정하지만, 정부의 개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후기 자본주의와 유사하고, 실제로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명백한 차이는 있다. 후기 자본주의의 뿌리가 자본주의라면, 사회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뿌리는 극단적으로 다르지만, 절충적이고 온건하다는 측면에서 서로 닮았다.
. 경제 체제는 종교가 아니고, 선악의 문제도 아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효용과 이익의 문제인 것이다. 어떤 경제 체제가 나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한국 사회에서 경제 체제는 이념과 종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현 체제를 비판하거나 다른 체제의 가능성을 말하는 이가 이단이 되어, 종교 재판을 받는 것은 합리적인 현대인의 사회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 한국 사회가 선택해야 하는 문제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신자유주의의 방향으로 향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흑인 자본주의의 방향으로 향하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다. 이 두 체제는 오늘날 성장과 분배의 문제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성장중심정책과 분배중심정책
개별 경제 체제의 분배 문제를 살펴보면, 우선 공산주의적 사고는 함께 노동하고 함께 똑같이 분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음으로 신자유주의적 사고는 개인의 노력, 능력, 사회적 기여 여부에 따라 재화를 분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후기 자본주의나 사회 민주주의적 발상은 가장 필요로 하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서 분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 국가가 세금을 낮추고,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시장에 대한 간섭을 줄이는 정책이 성장 중심 정책이다. 이 정책의 장점은 기업, 국가 경쟁력 강화이고, 단점으로는 빈부 격차 심화, 사회 약자 소외일 것이다.
. 세금이 늘어나면, 이를 통해 국가의 재정 상태가 회복되고, 국가는 충분한 재정을 이용해 복지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이것은 저소득층과 사회적 약자를 도울 것이고, 그들이 다시 사회적 역할과 의무를 수행하도록 이끌 것이며, 궁극적으로 과도한 빈부 격차를 줄이게 될 것이다. 이를 분배 중심 정책이라고 한다. 이 정책의 정점은 빈부격차 해소, 사회 약자 구제이고, 단점은 기업, 국가 경쟁력 약화일 것이다.
. 성장과 분배는 기본적으로 반비례의 관계를 갖는다. 성장을 추구하다 보면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반대로 분배를 추구하면 성장의 문제가 발생한다.
성장과 분배는 대립되고 모순되는 개념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다.
문제는 시기다. 언제 분배할 것인가? 우선 분배하자는 입장과 성장 이후에 분배하자는 입장의 거리가 너무도 멀어 보인다. 당장 오늘의 삶이 궁핍한 이에게 이후에 찾아올 미래 사회의 성장은 무의미하다. 또한 다국적 기업의 위협에 전력을 다해 대응하는 기업에 분배를 위한 세금 인상은 투자 의혹을 저하시킨다.
. 한국 사회는 성장과 분배 중 어떤 가치를 우선해야 하는가? 이것은 옳고 그름이 문제는 아닐 것이다.
두 가치는 분명 각각의 장단점을 갖고 있다. 경제, 사회, 윤리적 차원에서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이고, 잃는 것이 무엇인지 꼼꼼하게 따져본 후에, 서로를 배척하고 적대시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수준에서 합의해야 할 것이다.
최종 정리
. 경제를 이해해야 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경제가 역사를 움직이는 토대가 되고, 정치와 사회를 이해하는 근간이 되어서다.
. 경제는 단순하게 두 가지의 입장 대립으로 구분된다.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는 입장과 정부의 개입을 추구하는 입장.
시장의 자유는 세금을 인하하고, 규제를 완화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렇게 되면 정부의 역할은 축소되고, 복지도 줄어든다. 반면 정부의 개입은 세금을 인상하고, 규제를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이에 따라 정부의 역할이 확대되고 복지가 향상된다.
.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태동하던 초기에 발생한 초기 자본주의는 시장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했다. 시장에는 자기 조절 능력이 있어서 별다른 계획은 필요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경제 대공황을 거치며, 자유 시장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자유시장은 위험천만해 보였다. 결국 정부가 강력히 개입해서 시장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후기 자본주의가 탄생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이르면,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한 장기 불황은 세계적인 불만을 일으켰다. 결정적으로 정부 개입을 대표하던 소련의 붕괴를 묵도 하면서, 사람들은 차라리 시장의 자유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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