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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비존재 (시)
한돈수
2025. 6. 6. 04:13





존재와 비존재
- 비 내리는 만석공원에서
October 14, 2023
나는
산소와 탄소, 수소와 질소,
조금의 칼슘과 인으로 이루어진
유한한 몸 하나를 빌려
세상에 잠시 다녀왔다.
몸의 78퍼센트는 물,
그 물은 결국 다시
하늘로, 강으로, 바다로 돌아갈 것이니
나는 비가 되어 내릴 수도,
호수 속 작은 물결이 될 수도 있겠지.
화장의 불길 아래
남은 22퍼센트의 티끌은
곱게 가루 되어
온타리오 호수 어딘가에 뿌려지리라.
그러면 나는
로렌스강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고
인도양과 태평양을 지나
북극해와 남극해까지
지구의 숨결 속을 떠돌겠지.
지구의 78퍼센트가 바다라 하니
나는 존재보다 더 넓은 비존재가 되어
어디서든 흐르고, 숨 쉬고, 존재할 것이다.
기억 속 조상은
고작 삼대, 많아야 사대.
오대가 지나면
무덤도, 이름도, 이야기조차 사라진다.
그리하여 나는 완전한 자연이 되리.
그날
누군가 나를 그리워한다면
그들은 비 오는 호숫가에 서면 되고
바다를 바라보며 눈을 감으면 된다.
나는 그 물비늘 속 어딘가에서
파도 따라, 바람 따라
그들의 곁에 잠시 머물 것이다.
비 내리던 그날,
만석공원의 정자에서
나는 나의 사라짐을 상상했다.
그러나 그 사라짐은
결국 더 깊은 존재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June 04 2025. Thursday
Donsoo Han, sea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