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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강을 건너온 나의 인생길 (시)

한돈수 2025. 6. 10. 22:50



시간의 강을 건너온 나의 인생길

Donsoo Han, 2025.6.4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 상현리 691번지,
작은 산 셋이 감싸 안은,
열한 채 집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마을, 가산.
그곳에서 나는
가재를 잡고, 새알을 찾고,
웅덩이 물에 뛰어들어 미역을 감고,
참외 수박 서리하며 웃음 짓던 아이였다.

겨울이면 썰매를 타고,
기차길까지 십 리를 걸어
저 철마를 타고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울타리의 오디를 따먹고
토끼에게 풀을 뜯어다 주던
꿈 많은 아이였다.

집 앞 마당 옆의 조그만 샘물에서
세수도 하고, 발도 씻고,
어머니는 빨래를 하셨다.
집 뒤편엔 감나무 다섯 그루,
그리고 아버지의 호두나무 하나.
그 나무들은 곧 우리 가족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누나, 동생,
그리고 나,
막내 여동생은 가장 작고 감도 덜 열리는 나무를
그저 무척이나 좋아했다.

해가 지면 마을은 고요했고,
부모님이 늦는 날이면
우리 사형제는
어둠 속 마당에서 놀며
기다림을 배웠다.

국민학교는 십리길,
너무 멀어 자주 발걸음이 무거웠다.
학교 가기 싫어 몰래 산속으로 들어가
개울가에서 가재를 잡으며 놀던
그 시절,
선생님 손에 이끌려
아버지께 회초리를 맞던 기억이
아직도 아프게 선명하다.

그러나
가난했어도 배고프지는 않았고,
아버지는 누구보다 성실히,
농사와 교사라는 두 일을 해내셨다.
사랑과 책임으로
우리 네 남매를 키워내신 분.

수원 북중학교 시절,
프라타나무 아래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공 하나로 축구하던 기억.
“펠레 동생, 걸레!”
불렸던 별명이 지금도 웃음을 짓게 한다.
친구들과의 추억은
지금도 조약돌처럼
마음 한켠에서 반짝인다.

고등학교, 대학, 군대,
그리고 기아자동차 입사.
기계 도면을 읽으며
일본어도 독학으로 배워내던
열정의 시간.
술잔 기울이며
삶과 꿈을 논하던 동료들.
그리고
1984년 10월 13일,
인생의 반려자와 손을 잡다.

딸 혜진, 아들 상빈.
가족은 네 식구가 되었고
1988년 도쿄로 주재원 파견,
5년 반의 일본 생활 속
우리 가족은 성장했고,
나는 더 단단해졌다.
귀국 후의 회사 생활,
연구소와 상품기획실
그리고 1999년,
IMF의 바람 속에 퇴직.

그 무렵 아내는
캐나다 이민 서류를 조심스레 내밀었다.
망설였지만 결정했고,
우린 2002년에 떠났다.
나는 2년간 기러기 아빠로,
그리움의 반을 안고
일터와 가정을 오갔다.

2004년, 완전한 이민.
작은 베이글 가게를 시작하며
전혀 모르던 장사에 뛰어들어
15년을 꾸려냈다.
COVID-19 직전까지,
우린 거기에서
살고, 버티고, 웃었다.

그 사이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여 손주도 네명.
운 좋게도
모두 토론토에서 살고 있다.

2020년,
나는 은퇴했다.
그리고 지금,
창밖엔 토론토의 여름 햇살이 비치고
나의 발 아래엔
시간의 강이 조용히 흐른다.

나는 그 강을
건너왔다.
샘물에서 시작된 작은 물줄기가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이제 여기,
조용한 강가에
나의 인생길을
잠시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