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삿보로의 눈과 함께한 삶의 여행 (시)

한돈수 2025. 6. 13. 10:41



삿보로의 눈과 함께한 삶의 여행

삿보로의 하늘 아래
첫눈이 조용히 내려앉던 날
내 마음에도 한 송이 눈꽃이 피었다
그 눈은 흰 것이 아니라
시간의 빛, 추억의 무늬였다

젊은 날 우린 빠르게 걸었다
잡은 손 놓치지 않으려
그토록 달려왔는데
지금은 느리게 걷는 것이
더 아름답다는 걸 안다

오도리 공원에는
하얀 기억들이 내려와
우리를 감싼다
누가 뭐라 해도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가장 따뜻한 곳에 서 있다

스스키노의 밤거리는
네온보다 조용한 눈이 좋다
젊은 시절의 욕망보다
이제는 서로의 온기가 더 그립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지만
우리의 시간은
천천히, 곱게 흐른다

조잔케이의 작은 족욕탕에
나란히 발을 담갔지
말없이 스며드는 온기 속에서
우린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오래 전부터
서로의 아픔을 데우고 있었구나

다리 위에 서서 바라본 계곡
눈 쌓인 바위,
흐르다 멈춘 듯한 강물,
그리고 잠시 멈춘 우리의 발걸음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지
아무 말도 없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한 폭의 풍경 속 인물처럼

기차는 오타루를 향해 나아가고
창밖 눈 내리는 바다 풍경은
인생이란 여행의 끝자락에서
그토록 맑고 순한 위로처럼 다가온다

삶이란 결국,
한 사람과 눈 내리는 거리를
천천히 걸어가는 일
그 길 위에서
나는 내가 누구였는지를,
그리고 누구와 함께였는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December 14 2024. Donsoo Han, sea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