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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의 점심 (시)

한돈수 2025. 6. 22. 07:04




아버님의 점심

– Donsoo Han, 2022.11.04


작년 어머님 1주기,
그때 뵙고
거의 일 년 만에
다시 아버님을 뵙는다.

토론토를 떠나
일본을 들러
김포에 내려
리무진 타고
한일타운, 오후 한 시.

점심도 거르시고
문 앞에서 기다린다는 연락.
죄송한 마음,
그리고 반가움이 먼저 든다.

동생의 차를 타고
백세 삼계탕집으로,
누님 차를 타고 오신 아버님과
거기서 오랫만에 마주한다.

얼굴빛 곱고
미소엔 생기가 흐른다.
안심이고, 다행이고,
참 반가운 순간.

₩17,000짜리 삼계탕 한 그릇,
배가 불룩 나오도록
푸짐한 양, 깊은 맛.
아버님은 말없이
지갑을 여신다.

은퇴 후에도 매달 연금으로
손자 손녀에게 용돈을,
식사 자리엔 늘
아버님이 계산하셨다.

내 나이 예순다섯,
아직도 아버님이
계산하시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따뜻하다.

아버님을 뵈러 오는 길,
금전적 부담 없는
편안한 마음이
나를 따뜻하게 감싼다.

어제는 바람 불고
스산했던 날,
백청우 칼국수집에서
따끈한 국물로 속을 데웠다.

이번엔 내가 계산했다.
아버님, 누나, 동생,
우리 부부까지
여섯 그릇의 온기.

가끔은 사드리는 기쁨,
그마저도 아버님께
받은 마음의 일부다.

아버님은 점심을 즐기신다.
메뉴도 고르시고
단골 대접도 받고
계산도 하신다.

살아 있다는 기쁨,
나가서 외식할 수 있는
그 자유, 그 힘.
그것이 아버님의 쾌감이다.

암산으로 계산하시고
옛이야기를 또렷이 들려주신다.
그 정신은 여전히
맑고 단단하다.

91세,
보청기를 끼시고,
시력은 흐려졌어도
세 달에 한 번씩
검진을 받으시며 살아가신다.

지팡이에 의지해도
스스로 움직이시고,
전화를 하시고,
일주일에 두 번은
친구들과 게이트볼도 치신다.

함께 식사하고
택시 타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그 걸음이
얼마나 귀한지.

나는 빌어본다.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건강하시고
평온하시고
행복하시길.

그리고 나도,
그 뒤를 따르는 나의 삶도
후덕하고, 건강하고,
평온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