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사과에게 느낀 감정 (시)

한돈수 2025. 7. 9. 03:33




사과에게 느낀 감정

   - May 2023. Donsoo Han,  Seamind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다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겨울 내내 견딘 가지 끝
작은 잎눈과 꽃눈이
봄바람을 맞아 깨어나
연둣빛 잎이 돋고
연분홍 꽃이 피었다

꿀벌이 다녀가고
다른 나무의 꽃가루를 받아들여
하나의 열매가 되기까지
그대는 조용히, 그러나 치열히
자신을 키워냈다

꽃잎은 떨어지고
씨방은 커져 씨를 감싸고
그 주위를 살로 메워
달콤하고 단단한 사과가 되었다

그 긴 여정을 지나
내 손에 들어온 그대—
나는 살만 베어 물고
씨는 아무렇지 않게 버리려 한다

그대가 지켜온 생명을
나는 그냥 과일이라 불렀다

사과여,
그대 안의 시간과 뜻을 생각하면
오늘 이 한 입이
왠지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