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아버님의 6.25 부상

한돈수 2021. 3. 22. 00:03
아버님은 수원농고에 다니시다 1950. 12. 21.날 입영하셔서 제주도에서 훈련을 받으시고 1951.04.12.에 입대하셨다.
1952년에 전투중 오른쪽 대퇴부에 총상을 입으셨다.
총을 맞고 쓰러져서 일어나려고 해도 일어날수가없어 애를 쓰고 있는데 같은 소대의 전우가 발뒤꿈치에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입고 고지에서 내려오다가 아버지를 만나 부추겨주어 겨우 내려와 참호까지는 30미터가량 올라가야하는데 도저히 걸을수가 없어 포복으로 올라 갔다.
참호에서 소대본부가 있는곳까지 참호길을 따라 두손으로 집고 한발로 걸어서 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의무병의 응급치료를 받고 당카(들수있는 이동침대)의 도움으로 4명의 군인이 4키로미터정도 떨어진 북한강변까지 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부상이 아주 심한 한명은 헬리콥터로 갔고 아버님은 배로 화천댐부근의 야전병원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차로 춘천야전병원으로 옮겨져 3일동안 치료를 받고 기차로 서울의 36 육군병원으로 가서 15일동안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기차로 경주의 18 육군병원으로 갔다. 가는 도중 수원역에 잠시 정차했을때 아버님은 편지를 써서 아무도 없는 플랫폼에 던져 놓았단다.
경주의 18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을때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면회를 오셔서 3일동안 계시다 가셨다고 한다. 수원역에 던져 놓은 편지를 누군가가 보내준것이다.
면회오실때 100만원(그당시 쌀한말이 5만원)을 갖고 오셔서 이돈으로 전역하라고 하셨는데 이제 다리를 다쳐서 전역해야만 한다고 맛있는것 사 먹으라고 해서 10만원만 받았다고 한다.
그후 신경수술을 위해 부산의 569병원으로 가셨고 그때 천수 어머님께서 면회를 와서 깜짝놀라고 고마웠다고 한다.
그후 제대하는 사람들을 위한 천막으로된 삼일 정량 병원으로 갔고 그곳에 할머니께서 면회를 오셔서 3일간 머물다 돌아가시고 아버님도 말년휴가 일주일을 받았고 1953. 04.10.에 제대하셨다.
2개의 목발을 집고 오시다 동네 사람들이 부끄러워 야산에서 낮동안 계시다가 집에 가셨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걱정하실ㄲ봐 집근처에서 목발 한개는 숨겨 놓고 집에 들어 가셔단다. 그후 목발을 버리고 지팡이로 의지하며 다리에 힘을 길러 6월경에는 혼자 걷기 시작한다 .
부상을 딛고 열심히 살아가신 아버님이 어머님의 노력으로 국가유공자가 된것은 1976년 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또 하나의 시련
아버님이 3살정도 일때 9살 더많은 형과 함께 원천저수지에 갔다가 물에 빠져 거의 숨이 넘어간 아버님을 큰아버지가 업고 와서 죽었다고 재로 묻어 놓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재를 불어대며 아버님이 살아나셔 따뜻한 방의 아랫목에 놓아두니 원기를 회복하고 살아났다고 한다.
이것은 아버님도 커서 할머니한테 들은 이야기라고 한다.

.1953. 10. 10. 부모님 결혼.
.1954년 할아버지 회갑.
.1945년 3월 국민학교 졸업.
.1946년 6월 졸업 : 국민학교 2번 졸업.
(1945년 9월 ~ 1946년 6월)
.할머니는 할머니 환갑년에 돌아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