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우리 둘의 시간
– 2021년 5월, 빅토리아 칼리지 벤치에서 –
오랜만에
햇살은 부드럽고, 바람은 말간 날
나는 아내와 함께
여러 번 벤치에 앉아 봄을 마셨다
벌써 저녁 여섯 시
아내는 먼저 집으로
나는 홀로 남아
빅토리아 칼리지의 오래된 벤치에 앉아
조용히 시간을 되새긴다
28세에 결혼하고
시흥, 안양, 도쿄, 의왕, 그리고
지금 이곳, 토론토에서
어느새 19년의 세월을 쌓았다
결혼할 때
이런 삶을 살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세상은, 삶은
참 알 수 없는 길로 우리를 이끈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결과가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
이 나라는 사실에
나는 고맙고, 감사하다
어떤 날,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었을까
누구와 앉아 있었을까
그런 상상도 스치지만
지금 이 석양 속의 나는
충분히 좋다
이제 은퇴한 지 1년
정신없이 달리던 삶을 지나
비로소 나와 아내,
우리 둘만의 시간이 생겼다
공통의 가치란 무엇이었을까
그 바쁜 시간들 속
생각할 틈도 없이
그저 삶을 살았다
이제
가족의 화합과 사랑
그것이 우리 삶의 첫 번째 가치
거기서 웃음이 나오고
행복이 자란다
하이킹, 여행, 영화, 독서…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것
조금 더 찾아가야겠다
아내는 쇼핑을 좋아하고
맛집을 찾아
먹고 싶은 음식에 마음이 꽂히고
여행에 설렌다
나는 조용한 독서,
골프, 배드민턴,
탁구와 당구, 낚시와 사진,
글을 쓰고
정치를 들여다보는 사람
다르지만
서로에게 기대어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더 유쾌하고, 즐거운 삶
우리만의 공통된 시간들
더 많이, 천천히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석양은 고요하고
벤치 아래
봄은 아직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