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문
2021년 여름, 코로나의 그늘 속에서 토론토의 하버 프론트를 걸었다.
평소 같으면 세계의 여행자들로 가득 찼을 호숫가가,
이날은 고요와 적막 속에 잠겨 있었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은빛 조각배 하나를 보았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호수 위에서 나를 향해 윙크하던 배,
그 사연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이민자로서의 내 자리와
이 땅의 아픈 기억을 함께 마주하게 되었다.
그날의 체험은
한 편의 시가 되어 내 마음에 남았다.
호수 위의 은빛 조각배
- August 2021. Donsoo Han, Seamind
오래간만에 찾은 하버 프론트,
온타리오 호수는 바람조차 얌전했다.
코로나의 긴 그림자가 드리운 오늘,
거리를 메우던 발자취는 사라지고
상점들은 닫힌 입술처럼 굳어 있었다.
예전 같으면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웅성거림,
언어와 음악, 웃음이 뒤섞여
호수를 축제의 무대로 만들었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그 모든 소리가 잠시 잠든 듯,
물결과 하늘만이 내 벗이 되었다.
그 고요 속에서
낯선 빛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호수 위에 떠 있는 은빛 조각배,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나를 향해 윙크하듯 빛을 보낸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그 배를 바라보았다.
왜 저곳에, 왜 지금에야,
그런 물음들이 가슴에 일렁였다.
돌아오는 길,
산책로 한켠에 새겨진 사연을 만났다.
이 조각배는,
원주민에게 저지른 잘못을 기억하며
그들에게 바치는 사죄의 표징이라 했다.
순간, 바람이 멈추고
호수의 파도가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다.
토론토, ‘사람이 만나는 장소’라 불린 이름.
그러나 만남이 언제나 환영만은 아니었음을
나는 뼈저리게 느꼈다.
수백 년 전,
이 땅의 숲과 강, 별과 호수는
그들의 언어와 노래 속에 살아 있었다.
그러나 빼앗김과 침묵 속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바람에 흩어지고,
그들의 땅은 낯선 이들의 발길에 밟혔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들의 땅에 이방인으로 서 있다.
이민자로서, 삶의 터전을 얻었으나
그 뿌리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내 삶 또한 공허한 빛에 불과할 것이다.
호수 위 은빛 조각배는
햇살을 반사해 다시 나를 부른다.
“기억하라.
이 땅의 눈물을 잊지 말라.
그리고 너의 삶으로 갚으라.
이 땅을 아끼고, 지키고,
모두가 평화롭게 머물 수 있도록.”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은빛 조각배의 파문이 호수 위에 번지며
내 마음에도 작은 기도를 남겼다.
영원히,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이
서로의 빛을 나누는 호수 위에서
평화의 배가 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