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에서 시작된 아버님과의 늦가을 여행
- November 10 2025. Donsoo Han, Seamind
작년, 너무 늦은 계절에 떠났던 여행은
차가운 바람과 감기의 추억만 남겼기에
올해는 어머님 기일을 지내고
곧바로 따뜻한 길 위에 서기로 했다.
아버님이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았던 그 해,
6·25 전쟁터로 떠나기 전
수원에서 걸어 내려와
방어진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제주로 향하던 그때의 발자국을
다시 보고 싶다 하셨다.
그래서 길을 정했다.
경주에서 하룻밤,
방어진을 지나 부산의 고종 사촌을 만나 또 하룻밤,
마지막은 거제에서 멈춰
우리 다섯 식구—
아버님, 누나, 남동생, 그리고 우리 부부—
오랜만의 가족 여행을 가기로 했다.
경비는 아버님을 뺀 1인당 40만 원,
미숙의 배려로 숙소는 한화 리조트.
11월 10일 월요일 아침,
아버님의 약과 옷가지를 챙긴 작은 가방,
이동 때 필요한 휠체어까지 실어
8시 30분 집을 나섰다.
집 근처에서 따끈한 커피 두 잔을 사고
영동 고속도로에서 중부내륙을 따라
천천히, 쉬어 가며 경주로 향했다.
여주에서 한 번, 문경에서 한 번,
휴게소마다 아버님의 호흡에 맞추어 쉬며
창밖으로는 속리산과 월악산,
문경새재의 단풍이 거대한 산등성이를 타고
불붙은 듯 번져 있었다.
한 번 보면 잊히지 않을 장면이
내 마음 깊숙이 오래 남았다.
경주에 닿아 순두부찌개로 점심을 하고
2시 체크인,
담톤 704호 창밖으로 펼쳐진
골프장과 호수의 풍경이
마음까지 환해졌다.
약간의 쉼 뒤,
아버님의 휠체어를 밀며
동궁과 월지에 발을 들였다.
바람 한 점 없이 고운 햇살이 비추는 오후,
우리는 천천히,
아버님의 옛 이야기와 함께 걸었다.
65세 이상 무료라는 작은 배려가
왠지 고맙고도 미안했다.
대릉원에서는
커다란 왕릉들과 감나무, 모과나무,
석양의 금빛이 서로를 비추어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들었다.
천마총 안까지 둘러보고
황남 두꺼비에서 저녁을 먹었다.
40분의 기다림 뒤
꼬막비빔밥 한 숟갈에
아버님은 “참 맛있다” 하셨고
묵은지 등갈비찜과 육회비빔밥도
다시 오고 싶을 만큼 훌륭했다.
밤이 깊어
유혹 같은 불빛을 뒤로한 채
숙소로 돌아왔을 때,
불 켜진 골프장에서
밤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정말 한국인의 골프 사랑은 대단하다.
맥주 한 잔 뒤
민화투 경주 원정 경기가 시작됐다.
아버님, 나, 남동생, 아내—
누나는 심판.
열 판의 결과는
아버님이 언제나처럼 1등,
남동생 2등, 아내 -3등,
나는 지역을 타서 꼴찌.
배꼽 잡고 웃다 보니
하루의 피곤이 모두 풀렸다.
그리고 아버님은
“여행 잘 다녀오자” 하며
찬조금 50만 원을 꺼내주셨다.
더 넉넉한 마음으로
내일을 기대하게 해준 따뜻한 손길.
밤 10시.
아버님은 이내 잠드셨다.
그 숨결도, 오늘의 모든 장면도
고요한 경주의 밤 속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