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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일주기(3)

한돈수 2021. 11. 12. 16:34








어머님 일주기 2주전에 워싱턴에 사는 막내는 한국에 들어왔고, 난 10일전에 들어왔다.
인천공항은 아직도 코비드의 영향에서 벋어나지 못하여 한산하고 경계가 삼엄하다. 수원에 가는 리무진 버스도 하루에 두번, 09:50 과 18:10에 1터미날에서 출발한단다. 약 2시간의 여유를 만끽한 다음, 리무진을 타고 아버님 댁에 도착했다.
일년만에 본 아버님의 모습이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는 나를 기다리시느라 평소보다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의 시간을 가졌다.
아버님의 생각은 모두 어머님의 일주기에 마춰져 있었다. 준비하여야 하는 것들에 대해 세세하게 말씀하셨다. 일년전 49제 준비할때와 많이 다른 것은 없지만 다시 또 전부 말씀하셨다.
그리고 1주기는 대상이고, 2주기는 소상이라고 말씀하시고 3년이 지나면 탈상을 하고 모든 장례에서 완전히 벗어난다고 했다.
이야기 말미에 막내가 일주기 제사가 끝나면 10일후에 미국으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해서 모처럼 만난 사남매와 아버님이 함께 동해안 속초로 여행을 가자는 의견이 나왔고 일정을 체크해보니 11/3~11/5까지가 가능하다고 하여 나중에라도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덜기위한 여행을 하기로 했다. 아버님도 만족해하시며 여행 경비를 내어 주셨다. 이렇게 경제적 여유를 갖추고 계신 아버님이 존경스럽다. 많은 자산을 보유하는 것 보다는 삶애 필요한 경제적 여유를 갖고 사는 것이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삼일간의 강원도 동해안 여행은 즐겁고 행복했다. 대수 친구의 도움으로 얻은 속초 농협연수원은 깨끗하고 짜뜻하고 앞에 보이는 설악산의 풍광도 아름다웠다. 동명항에서 제철 여덟개 어종으로 떠준 회는 맛있고 푸짐하고 가격도 저렴했다. 또 가져온 매운탕 거리로 끓인 매운탕도 천하일미 였다. 동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드라이빙하면서 옛날 와이프와 같이 갔던 송지호 햐수욕장의 모래를 밟고, 파도 소리 들으며 그 옛날의  행복하고 설레이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언젠가 기회되면 둘이서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올라가다 화진포 해수욕장에 들렸는데 고운 모래가 아주 넓고 길게 펼쳐진 모래사장이 인상적이었다. 낮은 파도도 해수욕을 즐기기에 너무나 좋은 곳이었다. 여름이 되면 꼭 와보고 싶은 곳이었다.
출입신고를 하고 간 통일전망대.
난 처음으로 이곳에 왔다. 북쪽 해안에 그림처럼 펼쳐진 해금강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참을 보다가 육지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산 보우리에 세워진 남쪽과 북쪽의 초소가 몇개가 보이고, 좀더 시선을 돌리면 흐릿하게 돌산들이 보인다. 우리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들었던 금강산 일만 이천봉 이다. 잘 보이진 않지만 어렴풋한 윤곽에 마음속으로 아름다움을 그려볼 수있는 금강산...
지금 이나이가 되어 생각해보니 무슨 권리로 이렇게 갈라놓은 외세와 그것에 놀아난 남과 북의 국가라는 공권력, 이것을 유지해 나가는 조직, 시스템,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개개인들. 모든 것이 잘 못된 사상하에서 몹시 어긋나 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쉬움과 화남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춘천의 소양호에 들러 호수변에 물든 단풍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고 춘천 닭갈비와 막국수를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조금씩제사 준비를 했다. 일요일 오후에는 금자누나와 선례누나가 집에 와서 이야기를 나누다 갔다.
월요일 오후에 인천 고모님이 오셨고 19:00경부터 제사상을 차리고 준비했다. 그 사이 한별과 상훈이 도착했고  제사는 20:00에 지냈다. 베렌다쪽에 병풍을 치고 상을 차렸다.
제사를 지낸후 저녁 식사를 하고 맥주를 좀 더 마셨다. 11시 40분경 잠자리에 들었다.
3시경 잠에서 깨어 많은 생각에 잠겼다.
작년 이 시간 어머님은 잘 주무시고 아버님과 아침 식사도 하시고 설거지도 하시고 아버님, 간병인과 함께 아파트 1층까지 내려가시어 앞에서 기다리는 누나 차를 타고 병원에 가시다 심정지가 와서 응급실로 달려 갔으나 운명을 달리 하시고 말았다. 병으로 아프시긴 했지만 이승과 저승을 달리하는 순간은 전혀 준비되지 못했고 아버님 품에서 어머니 혼자서 맞이 해야 했다. 어머님도 옆에서 함께 했던 아버님과 누나도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순간적인 사건이었다.
작년에 아버님과 누나에게서 들은 어머님 돌아 가실때의 정황이다.
잠자리에서 뒤척이며 있자니 밖에서는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5시경 일어나 보니 아직도 비가 내리고 일기 예보는 9시경에는 비올 확율 90%, 11시경에는 46%라고 한다.
10시에 한별이 카니발차를 타고 어머님이 계신 효원 공원으로 갔다. 도착하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어머님 계신곳에 가서 떨어지는 빗소리 들으며 눈을 감고 조용히 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아침 작성한 어머님 일주기라는 글도 읽었다. 한참이 지나도 빗줄기는 사그러 들지 않았다. 이제 이별해야지 하고 모두 차를 타고 출발했다. 차가 효원공원의 입구에 이르자 반짝하고 햇빛이 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차를 돌려 다시 어머님께 가서 가지고 온 음식을 담고 차례상을 차렸다. 차례상이 거의 다 차려질 무렵 하늘이 다시 검게 변하면서 비가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비를 맞으며 성묘를 그대로 진행하고 끝을 맺었다. 그리고 젖은 양말은 벋고 물을 털은 신발을 신고 차에 올랐다.
오는 길에 국물이 따뜻한 들깨 칼국수를 먹었다.
이렇게 우리의 어머님 일주기 제사와 성묘를 마무리했다.
어머님 편히 쉬시고 다음에 또 뵈요.

Nov. 10. 2021.
Donsoo Han,  sea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