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은 마술과도 같다.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행복감을 느끼기도하고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떨어지는 낙옆도, 피어나는 꽃 봉오리도 생각에 따라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눈물이 난다. 마음의 상태는 달라도 결과는 같다. 삶도 마찬가지로 그 모든것의 결과물이 나의 인생이다.
아기의 울음은 아기의 표현이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른의 몫이다. 아기를 잘 관찰하고 아기의 입장에서 생각하여야만 소통이 가능하다.
성인이된 타인과의 소통도 마찬가지다.
여명은 일출이 다가옴을 의미한다.
태양이 기울어져감은 일몰이 다가옴을, 석양은 태양이 멀어져 어둠이 다가옴을 의미한다.
인간의 태어남은 삶의 시작을 의미하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를 거쳐 노년기에 있슴은 죽음의 순간이 다가옴을 의미한다.
이 모든것은 자연의 현상이며, 이 현상을 거스르는 것은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손녀 로아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 핸드폰에서 나오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고 누워있다.
보름 있으면 백일이 되는 로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 진다.
이게 삶의 시작인 것을...
손녀 로아는 물소리를 들으면 마음에 평화가 오는 모양이다. 잠 투정할 때, 화장실에 들어가 물을 틀고 있으면 울음을 그치고 눈을 감고 조용히 잠든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이렇게 편안한 소리가 있는 것같다.
나의 그 소리는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찿고 싶다.
오후 2시.
온타리오 호수위로 햇빛이 내리 쬐인다. 햇빛을 만난 호수면은 은백색으로 눈을 마주하기가 어렵도록 빛을 발한다. 조금씩 햇빛을 덜 만나는 곳은 빛바랜 구겨진 은박지처럼 반짝 거리고, 내리 쬐는 햇빛에서 멀어진 곳은 짙은 푸른색이다.
이 색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인간의 삶도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희생되지 않고 순간 순간을 건실하게 버티며 존재한다. 희생되는 순간, 그 삶도 증발해 버린다.
아들네 집.
거실 벽 한켠에 말린 장미가 걸려있다.
내가 둘째 손녀 로아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서 준 장미꽃 다발이다. 지금은 로아의 백일을 보름쯤 앞에 둔 시점에 말린 장미가 있는 것을 보니 며늘 아이가 참 고마웠던 모양이다.
모든 것은 순간이다. 항상 순간 순간에 충실하면 그 순간이 지난 어느 순간에서 후회를 덜 하고, 그때 잘 했었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아들네 집.
추운 날씨의 오후. 모처럼 방문한 장인, 장모와 함께 눈썰매를 타러 가고 둘째 손녀 로아와 함께 있다.
베란다에 놓아둔 의자등을 덮은 덮개가 지난 바람에 벗겨져 퍼덕 거리고 있다. 아내의 성화로 베란다에 나가 덮개를 씌우고 잘 정리해 놓았다.
기분이 산뜻하다. 아들, 며느리가 나중에 보게 되면 얼마나 고마워 할까. 바라는 건 아니지만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 마음이 부자가 된다.
봄이 오면 호수의 얼음이 녹고 호숫 물과 오리가 춤춘다.
40대는 지식의 평등
50대는 외모의 평등
60대는 성별의 평등
70대는 건강의 평등
80대는 재물의 평등
90대는 생명의 평등이 온다.
인생은 어느 시점에서는 거듭남이 필요하다.
중년에 느끼는 것 : 젊음의 상실, 가치의 상실, 역할의 혼란 /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 인생은 눈 송이와 같다.
노년은 지금까지 인생의 찌꺼기를 모두 걸러내어 순수하고 깨끗해져가는 과정.
남과 녀가 결혼해서 함께 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독신주의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인간의 오만이다.
사람은 거의 모두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 그 가면은 남에게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씌어져 있다.
천재인 척, 완전한 척, 겸손한 척이란 척의 문화가 머리속, 가슴 속 깊이 곁들여져 살고 있다.
그런데 척의 문화가 없어진다면 이 세상은 좀 더 황폐해지고 무질서해질 것이다.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나로부터, 나에게서 기인한다.
화냄도 슬픔도 기쁨도 행복감도...
나의 삶은 이 세상 어딘가에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올바르게 살아가야 한다.
진리는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것이다. 순간 순간 무의식적이 아닌 깨어있는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이 진실된 삶이다.
불생불멸
생기고, 사라진다고 하지만 사실은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변화하는 것이다.
늙고, 죽는다고 하지만 단지 변화하는 것이다.
오늘도 창밖에 눈이 흩날린다.
수 많은 눈 송이 중 하나가 하나의 인생인 것 같다.
바람에 뒤엉켜 정신없이 흩날리다
알수없는 어디엔가 떨어져
추운 날이 지난 어느날 사라져 버린다.
이 눈송이 또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이루는 모든것은
종지 속의 물과 같다.
추운 겨울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얼음 구슬도 되었다가
봄에는 꽃 향기가 흐르는 맑은 물,
여름에는 햇님을 머금은 따뜻한 물,
가을에는 낙옆의 정취가 빛춰진 물이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모두 증발해 버리는 종지 속의 물.
성공적인 인생, 좋은 인생이란?
세상에서 추구하는 성공과 상관없이 자기가 만족하는 인생이다.
돈, 지위, 권력, 명예등은 상대적이고 이루면 성공이지만, 영원히 갖을 수가 없고, 없어지는 순간 좌절감과 실패감을 느낀다.
행복은 자신의 가치관 확립으로 부터 시작된다.
은퇴후의 가장 큰 변화는
아침에 울리는 알람이 일어나야만하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침이 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주인인 삶에서 내가 주인인 삶으로 된것이다.
평일날의 산행은 나를 부자로 만든다.
거의 아무도 없는 그 넓은 산의 나무들, 맑은 공기, 새 소리, 다람쥐의 움직임, 떨어진 낙옆, 쌓인 눈 그리고 길게 새겨진 오솔길이 이 순간에는 나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옆에 있는 당신의 온기를 느끼고, 나눌때 행복에 빠져들며 함께 있슴에 감사함을 느낀다.
가족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위로와 힘이 된다.
만약 가족중 누군가가 영영 만날 수 없이 사라졌다고 생각해보면 그가 있슴, 그 자체가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알게된다.
아름다운 이별이란,
곁에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잘 해주고, 떠날때는 미련없이 가볍게 '안녕'하는 것이다.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을 마음속에서도 떠나 보내야만 진실한 이별이 된다. 때만 되면 되새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킨다. 좀더 정제되고 지혜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그를 위해서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보내줘야 하고, 나를 위해서도 가볍게 떠나 보내줘야 하고, 남은 가족을 위해서도 더 이상 붙잡지 않아야 합니다.
어머님이 떠나면서 나에게 준 선물은 무엇인가?
"너도 이젠 나이가 먹었으니 너무 일만하지 말고, 좀 쉬면서, 여행도 하고, 아프지말고 건강하게, 싸우지말고 화목하게 그리고 멀리에 있어 자주보진 못하지만 거기서 너희들만이라도 행복하게 잘 살아라. 그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을때 미루지 말고, 하고 싶은 것들 해야한다는 깨달음. 즉 몸이 아프고 나면 필요한 것이 최소한으로 줄어 든다는 것이다.
사람은 무언가를 하면서 그것에 대한 기대를 한다.
이 기대가 우리에게 실망, 불행, 기분 나쁨, 미움, 갈등등을 느끼게 한다. 무엇인가를 하는 것 자체에서 기쁨, 행복, 만족, 사랑등을 느끼면 삶 자체가 훨씬 가볍고 경쾌해질 것 같다. 이것이 성숙한 삶이 아닐까.
집착과 외면은 같은 마음에서 나온다.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을 유심히 관찰하고 파악해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나온다. 항상 고요한 마음으로 사색하는 삶을 살아보자. (March 01 2022)
자존심은 삶을 힘들게 한다. 사람은 자존감이 확실하게 차 있을때 자신을 가리는 자존심도 버릴 수 있다.
물드는 사람 : 평범한 사람
경계밖에서 물들지 않는 사람 : 종교인, 자연인
경계속에서 물들지 않는 사람 : 자유인
남을 물들이는 사람 : 참 자유인
자식은 어릴때는 돌봐주는게 사랑이고, 커서는 냉정하게 지켜봐주는게 사랑이다. 그런데 아이가 어릴때는 내가 돌볼 여력이 없었고, 나이들어서는 내가 지켜볼 인내가 없었다.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최고의 선물은 자식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집착과 외면은 제 뜻대로 하려는 욕망의 다른 표현이다. 마음대로 하려는데 따른, 그때 그때 다르게 일어날 뿐 그 근원은 같은 감정이다.
부족하다고 느끼면 가난하고, 여유를 느끼면 부자다.
형편이 어렵다고 괴로워만 할게 아니라, 베푸는 마음을 내면 오히려 마음이 부자가 되고 삶에 대해서도 의연해진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게 된다.
지금까지 해오던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가려고 할 때는 무작정 움직이는게 아니라, 미리 경험해 보고 판단하면 실패를 줄이고, 자신감있게 헤쳐 나갈 수 있다.
우리의 인생도 잘 물든 단풍처럼 늙어가면, 나이 듦이 결코 서글프지 않다. 자연이 변화하듯 편안하게 늙어가면 그 인생에는 이미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처지를 받아들인 사람의 얼굴은 무척이나 편안하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저분은 나이 들어도 참 밝고 당당하게 사는 구나.' 여긴다. 이런 모습이 바로 잘 물든 단풍이 아름답듯이 늙음이 비참해지지도 않고 초라해지지 않고 순리대로 잘 늙어가는 거라고 볼 수 있다.
잘 물든 단풍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나침'을 경계해야 한다. 젊었을 때 '포부'가 늙었을 땐 '노욕'이 된다. 나이가 들면 어떤 주장도 격렬하게 하기보다 평화적으로 설득하고 젊잖음을 유지해야 나도 좋고 세상에도 이익이 된다.
노인이 자기 인생을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는 잔소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 잔소리는 간섭하는 얘기, 시비분별하는 얘기, 걱정하는 얘기등 이다. 꼭 필요한 의사 전달은 잘 하여야 한다.
군자고궁
군자는 어렵고 궁핍해질 수록 단단해 진다.
이런 사람이 되려면 즐기는 사람이야 한다.
자기 삶의 터전을 간직하고 있으면, 아름답게 늙습니다. 그런데 이걸 놓쳐버리고 살면 노후가 추해집니다.
적어도 먹고 살 수 있는 기본은 가지고 있어야, 자식과 부모가 기대나 집착없이 독립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자기 삶에 대해 후회하는 것은 욕심에서 비롯합니다. 의미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욕심때문에 지금까지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 겁니다.
우리는 평생 자연에 기대어 살고, 인간사회에서 혜택을 받고 있다. 내가 모은 재산이 개인의 것이 아니고, 사회구성원들과 자연의 혜택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을 잊지 말고 공익에 쓰이도록 하면, 재산을 잘 정리하면서 복을 짓게 된다.
우리의 삶이란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태도를 지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흔히 운명론을 말하지만 그 운명도 내 자신이 만듭니다. 어떤 일이 내 생에 주어지는가가 운명이 아니라 그것에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하느냐가 운명입니다.
노년의 삶에 중요한 것은 어떤 목표를 세워서 욕심을 내지 않는 겁니다. 그래야 몸과 마음에 무리가 따르지 않습니다.
행복한 노후를 위해 준비한다는 것은 한번도 행복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흔히 행복하기 위해서 준비만 하다가 죽을 때까지 한번도 행복해보지 못한 채 죽는다. 그러니 준비할 것도 없다. 바로 지금부터 행복해야 한다.
지옥, 극락이 어디 따로 있는게 아니라 내 마음이 행복하면 극락이고, 내 마음이 괴로우면 지옥인 겁니다. 조금만 깊이 살펴보면 행복과 불행은 자기가 만듭니다.
현재 자기의 삶에 만족할 줄 알고, 자기의 삶을 긍정적으로 보면 항상 행복합니다.
내가 남을 사랑하고 이해하면, 내 마음이 행복합니다.
내가 남을 보살피고 도와주면, 내가 어른이 되고 주인이 됩니다. 이것이 자기를 가장 아릅답게 가꾸는 법입니다.
(April 01 2022 Donsoo Han, sea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