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2)

한돈수 2024. 5. 7. 05:54

5 장.  외로움에 관한 생각

우리가 외로운 이유

. 인간 중심 상담의 창시자인 미국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우리가 외로운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줬을 때, 상대가 수용해 주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마음이 문을 열고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만약 그랬을 때 상대가 나를 따뜻하게 지지해 주는 것이 아닌 내 연약하고 부족한 부분을 평가하고 상처 내고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떠벌리고 다닐 수도 있기 때문에 섣불리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상대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가면을 쓰고 사람을 대한다 진짜 자기 모습을 감춘 채 사회적 시각에서 봤을 때 비난받지 않을 수준에서 안전하고 피상적인 만남만을 가지는 것이 다 그럼 만남은 깊은 유대감이나 연결감을 느끼게 하지 못하고 누굴 만나도 마음에 공허함만 남는다.

. 칼 로저스에 의하면 부모로부터 안전한 분위기에서 수용적인 지지와 긍정적인 관심을 받지 못한 경우, 아이들에게 심리적인 벽이 생긴다고 한다. 그 부모 역시 자신의 부모로부터 존중받아 본 경험이 없으면, 자신도 모르게 자기 아이의 생각이나 결정을 마음대로 평가하고 컨트롤 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부모가 원하는 대로 아이가 행동했을 때만 인정하고 칭찬해 주면, 아이는 언제부턴가 자기 스스로의 느낌이나 결정을 신뢰하기보다는 부모의 바람이나 지시를 더 살피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란 아이는 부모 앞에서 자기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고 억누르는게 일상화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 감정을 숨기고 모든 것이 문제 없는 듯 가면을 쓰고 행동한다.

. 사람은 살면서 다양한 역할을 합니다. 직장 상사로, 대학 후배로, 아내로, 사촌 언니로, 학부모로, 그런데 우리가 그 사람의 대해 아는 것은 한두 가지 역할뿐입니다.
그래서 잘 아는 사람이라 해도 사실은 잘 모릅니다.

.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운 이유는 상대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보다, 상대에게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에게 내 말을 좀 들어 보라고 하지만, 서로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려고 해 결국엔 더 멀어집니다.

. 우리가 외로운 까닭은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고, 내가 그들을 향한 마음을 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용기를 내 마음을 열고 말을 걸어 보세요. 서로의 공통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 입니다.

.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불안의 깊이만큼 남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돌출 행동을 합니다.
특히 관계에서 나의 어떤 말이나 행동이 그의 깊은 불안을 자극하면, 갑자기 화를 내거나, 그날 이후 잠수를 타거나, 나와 절연합니다.

. 우리 마음은 행복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조건이라는 틀을 만듭니다.
내 주변 상황과 사람이 그 틀에 딱 맞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그 틀이 있는 한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내가 붙인 조건, 내가 만든 틀이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 외로움과 홀로 있슴은 차이가 있습니다.
외로움은 혼자 있지만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상태이고, 홀로 있음은 혼자지만 혼자 있는 것이 평온한 상태입니다.
똑같은 상황이지만 마음 상태에 따라, 외로움은 불행하다고 느끼고, 홀로 있음은 편안하다고 느낍니다.

. 혼자 있는 것을 즐기면 홀로 있음이고,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똑같은 상태가 곧바로 외로움으로 변합니다.

. 우리는 심심한 것을 두고 외롭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심한 것을 달리 보면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할 일이 없다고 무조건 외롭다는 말을 지지는 마세요.
우리의 괴로움은 주어진 현실이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고, 그 현실에 대한 내 마음의 해석이 가져옵니다.

. 똑같은 상황인데도 내 마음의 해석에 따라 괜찮을 수도 있고, 엄청난 마음의 상처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되도록이면 긍정적으로 해석해 보세요.

. 이미 일어난 일은 바꿀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어떻게 해석해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나쁜 일도 나를 거듭나게 하는 변화의 반환점으로 여기면 정말 그렇게 됩니다.

. 신은 우리를 여러 방식으로 외롭게 만들어서
결국엔 우리 자신에게로 향하도록 이끈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새로운 고독의 시대

. 지금의 세상은 함께 있지만 따로 있는 상태이다. 즉 같은 공간에 있긴 하지만, 우리 각자의 마음은 스마트폰을 통해 모두 다른 곳에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경우 모여서 얼굴을 맞대고 함께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닌,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나 문자 SNS에 몰두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른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조금이라도 지루하거나 틈이 생긴다 싶으면 스마트폰을 꺼내 메시지를 체크하거나 앱을 열어 다른 세계와 접속한다.
결국 현대인들이 느끼는 새로운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스마트폰 밖으로 나와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소통해야 한다.

. 상대의 얼굴을 맞대고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라면 SNS 에 올리면 안 됩니다. 툭 던진 비판의 말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큰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 혹시 나와 같이 할 친구가 없어 외로운 이유가, 한 친구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바라기 때문은 아닐까요.
나와 성격도 맞아야 하고, 노는 취향도 같아야 하고, 사는 수준이나 정치 성향도 비슷해야 하고 등등
나와 맞는 부분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 친구와는 만나서 그 부분만을 함께 하면 됩니다.
내 모든 면과 맞는 친구만 사귀려고 하면 평생 외로울 수 있습니다.

. 진정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나에게 지혜를 줄 사람, 좋은 에너지를 나누어 줄 사람을 내가 찾아가야 합니다. 내가 움직여야 새로운 세상도 만나게 되고 인생의 전환점도 생깁니다.

. 그가 나를 찾아와서 이야기하면, 그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된다.
그의 실제 모습을 제대로 알고 싶으면, 내가 그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야 한다. - 괴테

. 기대를 하니까 자꾸 실망합니다. 심적 결핍감과 외로움을 남에게 채워 달라고 하면, 자신은 자꾸 실망만 하게 됩니다. 자기 스스로가 깨닫고 변해야 합니다.

. 그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 사람과 맞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좋은 사람도 잘 맞지 않으면, 결국 나쁜 사람이 됩니다.

. 열탕에 들어가면 온도가 1도만 낮았으면 좋겠고,
냉탕에 들어가면 온도가 2도만 높았으면 좋겠다고,
사우나 갈 때마다 혹시 느끼지 않습니까?

. 외로움의 근본 원인은 혼자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혼자 있는 시간엔 항상 외로워야 하는데 우리는 혼자 있을 때 오히려 자유롭고 편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더 많습니다.
외로움이 근본 원인은 내가 행복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 생각을 믿게 되면, 지금을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고, 그 부족한 결핍감이 외로움을 만듭니다.

. 내가 누구인지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것은, 우주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분리되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에, 항상 외로움과 분리감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 외로움의 정체는 혼자라는 외적 상황보다, 혼자여서 문제라는 내면의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다.
결국 상황이 아닌 그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다.

. 역할 뒤에 숨겨 놓은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 주게 되면 훨씬 더 친밀해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신만 특별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거나, 반대로 남보다 열등하다고 느끼면, 그 역할의 가면을 더욱더 공고히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은 다 거기서 거기다. 외부 조건은 천차만별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다들 비슷한 심리적인 문제로 힘들어하고 아파한다.

. 정말로 주변에 함께 할 사람이 없어서 외롭다고 느낀다면 스스로 찾아 나서는 것이 좋다.
다양한 공부 모임, 운동 모임, 종교 모임, 독서 모임처럼 자기에게 잘 맞으면서도 본인 성장에 도움이 되는 소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 지금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보면서 최근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해 보길 권한다.
우리는 친구가 없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아 외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다가가야 세상도 내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6 장. 마음을 닦는다는 것

같이 잘 사는 법

. 첫째, '자기 기준을 너무 강하게 주장하지 않기' 이다.
본래 자기 기준이라는 것은 본인이 살아왔던 익숙한 방식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므로 객관적으로 옳다 그르다 말하기 어렵다.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뭔가를 할 때는, 자기 자신에게 익숙한 기준을 스스로 먼저 양보하고 조정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 '내가 조금 더 일하겠다고 처음부터 마음먹기'이다.가만히 보면 우리가 열심히 일할 때, 나는 알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나의 모습을 못 보거나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도 다른 사람이 열심히 일할 때, 그 사람이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계산하는 분별심을 아예 내지 않으면 좋겠지만 설사 그런 마음이 일어난다 해도 처음부터 내가 조금 더 일해야지 하고 마음먹으면 내 마음이 편안하다.

. 셋째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이다.
마음을 빨리 돌려 보면 처음에 나쁘게 보이는 것 안에서도 좋은 것을 찾을 수 있고, 반대로 좋아 보였던 것 안에서도 나쁜 것이 보이기도 한다.

. 마지막으로 혹시라도 다른 사람에게 불만이 생기거나 시비를 걸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을 때, 나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나는 지금 내가 맡은 일에 집중하고 있는가?'  화두 참가가 잘 될 때는 내 마음 보기도 바쁘기 때문에 다른 사람 일에 관여하지 않게 된다.
내가 해야 하는 일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을 때, 다른 사람의 잘못된 점이 눈에 들어온다. 즉 다른 사람이 흠은 어떻게 보면 내 마음 거울에 비친 내 흠이기도 하다. 이럴 때일수록 공경하는 마음이 가득했던 초발심으로 돌아가 처음 먹었던 마음대로 흔들리지 말고 차분히 내 일을 해 나가면 된다.

. 배움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책이나 다른 사람이 말을 듣고 머리로 분석하면서 얻는 배움과 본인이 직접 몸으로 뛰면서 참고 고생하면서 얻는 배움.
온몸으로 배운 사람은 입을 열지 않아도 왠지 믿음이 가고 대화를 나누면 그 깊이가 전해지면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구체적이면서 실용적이다.

. 똑같은 일을 했는데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면 이해도 되고 용서도 되는데,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하면 똑같은 일을 했어도 흠이 보이고 용서가 되지 않는다. 희한합니다. 우리 마음...

. 우리가 남을 비판하면 상대는 자신의 행동을 바꾸기보다 자신이 입장을 방어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정말로 상대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칭찬을 한 후 개선하길 바라는 점을 따뜻하고 친절하게 말하세요.
그게 아니라면 남을 비판하면서 우월감을 느끼려는 것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 내가 자주 우월감을 느낀다면 그건 내 안에 깊은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은 남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 자존감이 낮으면 자존심이 세집니다.

. 일이 되게 하려면 자기 입장만 백날 이야기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인지한 후 그것과 내 요구가 어떻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지 설득해야 합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변화가 없다면 상대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보세요.

. 나는 바꾸지 않고 세상이 내 마음에 맞게 바뀌길 원하기 때문에 삶이 고생스럽습니다.

. 미움을 같은 미움으로 상대하면 영원히 끝나지 않고 고통은 지속됩니다.
이해와 사랑만이 미움의 고리를 끊을 수 있습니다.
몇 천년을 내려온 이 간단하지만 심오한 진리에 머리를 숙입니다.

. 마음속 화를 입으로 표현해 버리면 업이 되어 내게 들어오고, 억누르면 병이 되어 내가 아프고, 가만히 그 화의 에너지를 지켜보면 자기가 알아서 모양이 변하면서 인해 살아집니다.

. 마음이 괴로울 때, 그 괴로움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나 관찰해 보세요. 그러면 그것이 내 생각으로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은 원래 물 위에 쓴 글씨처럼 잠시 모양을 드러냈다가 자국을 남기지 않고 곧 사라집니다.
이내 사라질 생각을 붙잡고 되새김질하면서 괴로워하지 마세요.

. 잘못된 한 생각이 올라오면 태산 같은 걱정과 두려움이 구름처럼 몰려오고, 잘못된 그 생각이 지나가면 걱정 없는 마음 하늘 푸르게 드러납니다.

. 천상과 지옥도 한 생각이 만듭니다.
그러니 잘못된 생각 믿지 말고 놓아 주세요.

. 생각에도 연료가 있습니다.
바로 감정이라는 연료입니다.
감정의 연료가 소진되면 더 이상 그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 본래 하늘은 동서남북 없이 하나인데, 우리 생각으로 동서남북이라 이름 지어 놓고, 갈라놓고 그 속에서 내가 옳다 네가 그르다며 싸웁니다.
우리 마음도 원래 나뉨 없이 하나인데, 생각으로 나라는 모습에 집착 해, 세상의 여러 모습들과 옳다 그르다 싸웁니다.

. 바람은 성긴 대숲에 불어와도 사라지고 나면 소리가 남지 않으며, 기러기가 찬 연못을 건너 날아도, 건너고 나면 그 그림자가 남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일이 생겨야 비로소 마음이 나타나고 일이 끝나면 마음도 따라 빈다.

. 텅 빈 큰 공간에 의자가 하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보통 모양 있는 의자만 의식하고 모양 없는 텅 빈 큰 공간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의자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텅 빈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마음이라는 텅 빈 공간 안에 한 생각이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생각만 의식하고, 생각의 존재를 가능하게 했던 그 텅 빈 마음 공간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 본성을 깨닫는다는 것은 나쁜 생각을 좋은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고, 생각이 생겼다 사라지는 텅 비고, 고요한 마음 공간을 의식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 마음이 현재로 오면 생각이 멈추고 고요해집니다.
그 고요함은 텅 빈 채로 밝으면서도, 모양이 없기 때문에 그 깊이가 한도 끝도 없습니다.

. 모든 생각들은 이 깊은 마음의 바다로부터
잠시 모양을 밖으로 드러낸 파도와 같을뿐,
이 깊고 충만한 마음 바다를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 한 생각이 끝나고 새로운 생각이 일어나기 전,
텅 빈 채로 살아있는 마음 공간을 느껴 보세요


마음 바다 이야기

. 완벽한 어둠 속에 있으니 마치 시간은 정지된 것 같고, 자신의 몸은 사라진 것만 같았다.
꿈이 없는 깊은 잠 속으로 빠진 것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무서웠던 처음의 마음은 점차 사라지고, 평화로운 침묵이 점점 그 자리를 대신했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상태가 이처럼 평화롭고 따뜻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 우리 마음을 어지럽히고 세상과 분리감을 만드는 주된 요인이 바로 생각입니다.
마음속에 올라온 생각에 집착하면서 그 속에 빠져 있으면 그 생각의 노예가 됩니다.
숨이 깊고 편안해질수록, 내 주의가 숨에 집중할수록 생각이 줄어들게 됩니다.

. 깨달음은 마음의 문이 열려, 세상과 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이 아닌 몸과 가슴으로 느끼는 경험입니다.
남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면서, 내가 기쁠 때 스스로를 관찰해 보세요. 세상과 분리된 내가 따로 있는지.

.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 과거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숨쉬는 현재로 돌아와 생각이 완전히 멈추고 고요해졌을 때, 생각 뒤에 배경처럼 있던 고요한 마음이 깨어나 스스로를 알아채기 시작합니다.

. 생각이나 느낌을 포함한 마음이 있고, 생각과 느낌이 사라지고 난 후 텅 비고 고요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 텅 비고, 고요한 마음이 온 세상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 수행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 우리는 꿈이 없는 깊은 잠을 통해 마음의 회복과 몸의 원기를 되찾습니다.
이처럼 생각이 텅 빈, 고요한 마음 상태는
죽음이나 무료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온전한 쉼, 생명  치유, 평화, 자유, 창조를 뜻합니다.

. 눈으로 보이는 세상과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습니다.
종교인이 된다는 것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을 느끼기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무르익게 되면
보이지 않는 세상과 보이는 세상이 둘이 아니고
놀랍게도 하나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 우리는 영적 경험을 하는 인간들이 아니고,
인간의 경험을 하고 있는 영적 존재 들 입니다.
        -  피에르 테야드 드 샤르댕

. 물고기는 바다가 자기 고향이지만,
헤엄을 치기 시작하면서 바다의 존재를 느낍니다.
새는 하늘이 삶의 무대이지만,
날기 시작하면서 하늘이 존재를 비로소 압니다.
형상이 있는 세상에 사는 우리 역시 형상의 집착이 가져다 주는 고통을 경험하면서, 종국에는 형상이 없는 근원의 세계를 찾고 찾다가 비로소 자신이 그 근원의 세계 안에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지성이 깨어날 때의 기쁨은
세상을 얻은 것 같이 마음 부자가 된 느낌이고,
영성이 깨어날 때 즐거움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내 고향으로 돌아온 느낌입니다.
지성이 깨어나면 내 안에 가치 기준이 생겨,
더 이상 남들 기준에 휘둘리지 않게 되며,
영성이 깨어나면 내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아
두 번 다시 현혹되지 않습니다.

. 우리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마음이 없던 순간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마음은 항상 있습니다.
올라오는 생각과 느낌으로 인해
마음이 상태가 계속 변할 수는 있지만,
마음 자체는 노력한다고 생성되거나 소멸하지 않습니다.

. 마음은 텅 빈 하늘과 같아서
많은 생각과 감정의 구름을 만들지만,
그 구름들이 마음 하늘 공간을
영원히 어지럽히거나 더럽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 본바탕은 텅 빈체로 영원히
청정하면서도 이미 해탈한 고요의 형태로 있습니다.


깨어있는 고요  투명한 침묵

. 바쁘게만 돌아가는 일상에서 잠시 멈추는 것은 몸과 마음에 보약이 된다. 특히 깊은 침묵과 만나는 시간은 너무도 소중하다.
왜냐하면 우리 본성은 완전히 멈추었을 때, 비로소 깨어나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마음을 들여다보면 끊임없이 생각과 느낌이 자연스럽게 올라온다. 그런데 생각과 느낌은 비교적 쉽게 알아차리지만, 생각이 일어났다가 그 다음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 있는 고요함은 잘 인지하지 못한다.
즉 생각과 생각 사이, 느낌과 느낌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고요한 침묵이 자리하고 있는데, 많은 이들은 그 빈 공간을 의식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왜냐하면 생각이나 느낌과는 달리 고요한 침묵은 아무런 모양이 없어서 쉽게 잡히지도, 어느 한 곳에 집중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 우리는 생각과 느낌이 일어나기 이전에도 있었고, 그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도 멀쩡하니 계속 존재한다.
즉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은 나라는 존재 안에서 구름처럼 잠시 일어났던 것이지, 근원적 존재의 내가 아니다.
그렇다면 생각이나 느낌보다 훨씬 이전부터 항상 있어 온 나는 무엇일까? 사실 이것을 깨닫기 위해 수많은 수행자들이 생각을 완전히 멈추려고, 각종 명상과 화두 참선을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가 직접 경험을 통해 찾아내야 하지만, 혹여 나의 몇 마디가 누군가에겐 경험의 인연으로 발전할 수도 있으니, 부족하지만 나누고 싶다.

. 생각이나 느낌이 일어나기 이전에도 있었고 그것들이 사라지고 나서도 한결같이 있는 것은 바로 고요한 침묵이다. 침묵이 살아서 아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생각이나 느낌도 고요한 침묵에서 나와 그 모습을 드러냈다가 시간이 지나면 침묵으로 사라진다.
따라서 고요한 침묵은 텅 비고 의미 없는 죽은 공간이 아니라 모든 생각과 느낌을 만들어 내고, 그들이 존재하도록 그 공간을 제공하고, 사라지려고 하면 품어서 소멸하게 하는 자애롭고도 살아있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깊이 들어가 고요한 침묵의 위치를 살펴보자.
우선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고요한 침묵을 느껴 보자. 이 고요함은 몸 안에 있는가? 아니면 몸 밖에도 있는가?  몸 안에 있는 고요함과 몸 밖에 있는 고요함이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그런 구분 없이 하나의 고요함으로 자리하고 있는가?
이번엔 고요한 침묵의 끝을 찾아보자. 끝에 도달할 수 있는가? 침묵 안에 한계가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자.
마지막으로 고요한 침묵을 잃어버리거나 완전히 없앨 수 있는지 확인해 보자. 아무리 큰 소리가 나도, 침묵은 이내 곧 회복되며, 상처 입지 않은 본래의 고요한 모습으로 바로 돌아온다.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하면서도 깨뜨릴 수도, 잃어버릴 수도 없는 고요한 침묵이 끝없는 우주의 가득하다.
부디 고요 속에서 깨어 있는 투명한 침묵과 만나길 기원한다. 깊은 평온함과 영원한 자유, 생명의 원천과 따뜻한 사랑이 또 그 안에 들어 있다.


. 자비는 같이 아파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즉 혼자 고립되어 아파하면 그 고통이 엄청 크게 느껴지고, 해결 방법도 찾지 못하지만, 같이 모여서 아파하면 그 고통의 크기가 많이 줄어들고, 그 안에서 지혜와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 고요히 앉아 보고 나니
평소의 내 기운이 들떠 있었음을 알았네.
침묵을 지켜보고 나니
일상이 내 말들이 시끄러웠음을 알았네.
지난 일을 살펴보고 나니
한가로의 시간을 낭비했음을 알았네.
세상이 문을 닫아 보고 나니
이전이 내 사람 사귐이 과했음을 알았네.
욕심을 줄이고 나니
평소에 나에게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네.
마음을 가까이 하고 나니
예전의 내 마음 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네.
                         - 명나라 문인 진계유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 혜민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