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신의 꿈과 이상을 저버릴 때 늙는다. 세월은 우리 얼굴에 주름살을 남기지만 우리가 일에 대한 흥미를 잃을 때는 영혼이 주름지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을 자신의 분수에 맞게 제대로 살고 있다면 노후에 대한 불안 같은 것에 주눅들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은 과거도 미래도 없는 순수한 시간이다. 언제 어디서나 지금 이 순간을 살 수 있어야 한다.
노년의 아름다움이란 모든 일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남에게 양보할 수 있는 너그러움에 있음을 잊지 말 일이다.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않고, 세상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비춰 보는, 이런 일들을 통해 노년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긴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네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긍정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이 존재계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근원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묻는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그때 그때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그 물음은 본래 모습을 잃지 않는 중요한 자각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 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언제든 떠날 채비를 갖춘다. 그 어디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순례자나 여행자의 모습으로 산다. 우리 앞에 놓인 이 많은 우주의 선물도 그저 감사히 받아 쓸 뿐, 언제든지 빈손으로 두고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한다.단순하고 자유로워 져야 한다.
언젠가 우리에게는 지녔던 모든 것을 놓아 버릴 때가 온다. 반드시 온다! 그때가서 아까워 망설인다면 그는 잘못 살아온 것이다. 본래 내것이 어디 있었던가. 한 때 맡아 가지고 있었을 뿐인데. 그러니 시시로 큰 마음 먹고 놓아 버리는 연습을 미리부터 익혀 두어야 한다. 그래야 지혜로운 자유인이 될 수 있다. 눈을 감고 그때를 생각해보면 자신이 살아온 삶의 자취가 값있는 삶이었는지 무가치한 삶이었는지가 분명해 진다.
내 몸이 성할 때 순간 순간을 잘 살아야 겠다.
내 삶의 키워드 : 성실, 도덕, 지혜, 건강, 신뢰, 정직
삶이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위한 얼마간의 자유시간 이다.
성공이란 가까운 이들에게 사랑받는 삶.
모든 것은 끊임없이 흐르고 변한다. 사물을 보는 눈도 때에 따라 바뀐다. 정지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같은 강물에 발을 두번 담글 수 없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집착할 게 아무것도 없다. 삶은 유희와 같다.
사람은 이 세상에 올때 하나의 씨앗을 지니고 온다. 그 씨앗을 제대로 움트게 하려면 자신에게 알맞은 땅을 만나야 한다. 당신은 지금 어떤 땅에서 어떤 삶을 이루고 있는지 순간 순간 물어야 한다.
삶의 비참함은 죽는다는 사실보다도 살아 있는 동안 우리 내부에서 무언가 죽어간다는 사실에 있다. 자신을 삶의 변두리가 아닌 중심에 두면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도 크게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 들일 수 있는 삶의 지혜와 따뜻한 가슴을 지녀야 한다.
때가 되면, 삶의 종점인 그날이 되면, 누구나 자신이 지녔던 것을 모두 놓아두고 가게 마련이다. 우리는 빈 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나그네이기 때문이다. 미리부터 이런 연습(놓아두고 가기)을 해 두면 떠나는 길이 훨씬 홀가분할 것이다.
모자랄까 봐 미리 준비해 쌓아 두는 그 마음이 곧 결핍 아니겠는가. 인디언들은 그날 그날의 삶을 즐길 줄 알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필요 이상의 것을 그들은 원치 않았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다.
누구나 삶의 종점에 이르면 허세를 벗어 버리고 알몸을 드러내듯 솔직해질 것이다. 하루 하루, 순간 순간을 우물쭈물하면서 세월을 헛되이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남기는 어떤 말보다도 진솔하고 울림이 크다.
공기와 물과 햇빛처럼 땅 또한 신의 선물이다. 모든 사람이 그 땅에 대해 공평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땅은 영원히 소유할 수 없으며 소유하면 얻은 것들을 모두와 공유해야 한다. 자본주의에서는 공유하기위해 돈이 필요하고, 공산주의에서는 공유하기위해 노동력이 필요하다.
어차피 인간사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홀로 남게 마련이다. 이 세상에 올때도 홀로 왔듯이 언젠가는 혼자서 먼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엄연한 삶의 길이고 덧없는 인생사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보다 성숙해 져야 한다.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의 지혜와 따뜻한 가슴을 지녀야 한다.
"지족천" 만족할 줄 알고 살면 그 자리가 곧 최상의 안락한 세계라는 뜻이다.
새로운 거처에서 더욱 단순해지고, 더욱 진실해지고, 더욱 순수해지고, 더욱 온화해지고, 더욱 친절해지고, 더욱 인정이 깊어지고자 노력할 것이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주어진 상황이 있다. 남과 같지 않은 그 상황이 곧 그의 삶의 몫이고 또한 과제다. 다른 말로 하면 그의 업이다. 그가 짊어지고 있는 짐이다.
일에서 이치를 익히고 그 이치로써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간다. 순간 순간 그가 하는 일이 곧 그의 삶이다.
무슨 일이든 그 일을 하는 과정을 통해 한 걸음 한 걸음 인간이 형성되어 가면서 보다 인간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자신이 하는 일에 보다 높은 긍지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이기 때문에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따를 뿐 아니라 자신이 몸 담아 사는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들 삶도 바로 지금 이 자리를 떠나서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다른 시절이 있지 않다. "
책을 가까이 하면서도 그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아무리 좋은 책일지라도 거기에 얽매이면 자신의 눈을 잃는다. 책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읽을 수 있을때 열린 세상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책에 읽히지 않고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책에는 분명히 길이 있다.
자신의 인생을 단순하게 살면 살수록 우주의 법칙은 더욱더 명료해질 것이다. 그때 비로소 고독은 고독이 아니고 가난도 가난이 아니게 된다. 그대의 삶을 간소화하고 간소화하라.
진정한 부는 많은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것이 부라고 잘못 알아서는 안된다. 부는 욕구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적은 것을 바라면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 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몫이 있다. 자신의 그릇만큼 채운다. 그리고 그 그릇에 차면 넘친다. 자신의 처지와 분수 안에서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진정한 부자이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나야 봄이 온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집고 일어선다.
3현이 생각 난다. 현재, 현물, 현장 이것에 해답이 있다.
온갖 세속적인 얽힘에서 벗어나 산과 들과 숲속을 걷지 못한다면 나는 건강과 영혼을 온전하게 보존하지 못할 것같다.
그때 그곳에서 그렇게 사는 것이 그날의 삶이다. 그와 같은 하루 하루의 삶이 그를 만들어 간다. 이미 이루어 진것은 없다. 스스로 만들어 갈 뿐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때가되면 그 생을 마감한다. 이것은 그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생명의 질서이며 삶의 신비이다. 만약 삶에 죽음이 없다면 삶은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죽음이 삶을 받쳐주기 때문에 그 삶이 빛날 수 있다.
깨어 있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그 순간을 살 줄 알아야 한다. 좋은 친구란 주고 받는 말이 없어도 마음이 편하고 투명하고 느긋하고 향기로운 사이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그리움과 아쉬움이 받쳐 주어야 신선감을 지속할 수 있다.
좋은 만남에는 향기로운 여운이 감돌아야 한다. 그 향기로운 여운으로 인해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공존할 수 있다. 사람이 향기로운 여운을 지니려면 자신의 삶을 조심 조심 가꾸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만날 때마다 새로운 향기를 주고 받을 수 있다.
어떤 주례사
각자 자기 식대로 살아오던 사람들끼리 한집 안에서 살아가려면 끝없는 인내와 배려가 받쳐 주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지 말고 맞은편의 처지에서 생각한다면 이해와 사랑의 길이 막히지 않을 것이다.
부부로서 만난 인연을 늘 고맙게 생각하라. 서로 대등한 인격체로 대해야지 집 안의 가구처럼 당연한 존재로 생각하지 말라.
아무리 화가 났을 때라도 말을 함부로 쏟아 버리지 말라. 마음에 금이 간다.
공통적인 지적 관심사가 없으면 대화가 단절된다. 대화가 끊어지면 맹목적인 열기도 어느덧 식고 차디찬 의무만 남는다. 삶의 동반자로서 원활한 대화를 지속하기 위해 책을 읽는등 탐구하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가슴에 녹이 슬면 삶의 리듬을 잃는다. 사는 일이 곧 시가 되어야 한다.
가진 것이 많을 수록 빼앗기는 것 또한 많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적게 가지고도 멋지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존중할 때만이 그대들은 성장 할 수 있다. 어머니 대지를 사랑하고 존중하기를 우리는 기도 드린다. 대지는 인간 생존의 원천이다. 이 다음에 올 여행자들을 위해 이 대지를 더 이상 더럽히는 것을 막아야 한다. 물과 공기와 흙과 나무와 숲, 식물과 동물들을 보호하고 보존하라. 위대한 정령은 우리에게 이 대지를 소유하라고 준 것이 아니라 잘 보살피라고 맡긴 것이다.
사람은 책을 읽어야 생각이 깊어진다. 좋은 책을 읽고 있으면 내 영혼에 불이 켜진다. 읽는 책을 통해서 사람이 달라진다.
깨어 있고자 하는 사람은 항상 탐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배우고 익히는 일에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 독서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탐구의 지름길이다.
그 누구를 가릴 것 없이 배우고 찿는 일을 멈추면 머리가 굳어진다. 머리가 굳어지면 삶의 생기와 타력을 잃는다. 생기와 탄력이 소멸되면 노쇠와 죽음으로 이어진다.
어릴때부터 책을 읽으면 젊어서 유익하다. 젊어서 책을 읽으면 늙어서 쇠하지 않는다. 늙어서 책을 읽으면 죽어서 영혼이 썩지 않는다.
참회는 묵은 허물을 훨훨 털어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의지에서 생긴 신앙적인 의식이다. 자신이 범한 업의 찌꺼기를 말끔히 청산하고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진 삶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다.
한 장밖에 남지 않은 달력을 바라보며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 본다. 내게서 또 한 해가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내가 누구에게 상처를 입혔거나 서운하게 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용서를 구하고 참회를 하고 싶다. 상대방과 나 자신에게 다 같이 도움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깨어 있고자 하는 사람은 살아가는 삶이 밝고 활달하고 분명해야 한다. 어둡고 음울하고 불분명함은 진정한 삶이 아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만이 아니라 만나는 이웃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식물은 동물에 비해 그 속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고 소박하고 지극히 자연스럽다. 정직하고 진실한 덕과 시원한 그늘과 향기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나무와 꽃은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 그 시기를 잘 안다. 결코 어기는 일이 없다.
위기를 느끼면 자신의 뒤를 잇도록 씨앗을 담을 꽃과 열매를 많이 많이 만들어 낸다. 탐욕스런 사람들보다 더 훨씬 지혜롭다.
나무를 심고 보살피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오래된 것은 아름답다.
거기에는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 흔적에서 지난날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다.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탐욕이고 인색이다. 그리고 주지않고 받기만 하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빚이고 짐이다.
덧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언젠가 자신의 일몰 앞에 설 때가 반드시 온다. 그 일몰 앞에서 삶의 대차대조표가 훤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때는 누군가에게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다. 그 때는 이미 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다가 간 자취를 미리 넘어다 볼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그 자신으로서는 볼 수 없다. 평소 자신과 관계를 이루었던 이웃들의 마음에 의해서 드러난다.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귀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그 행위에 의해서 천한 사람도 되고 귀한 사람도 되는 것이다.
한 생애를 마감하는 죽음은 엄숙하다. 저 마다 홀로 맞이하는 죽음이므로 타인의 죽음을 모방하거나 흉내 낼 수 없다. 그만의 죽음이기 때문에 그만큼 엄숙하다.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비로소 책을 제대로 대할 수 있다. 지혜는 문자가 아니지만 문자로써 지혜를 드러낸다. 이렇게 되어야 아직 활자화되지 않은 여백의 글까지도 읽을 수 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May 28. 2021.(f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