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7년에 이 세상에 태어나
한국의 수원 근교의 아주 조그마한 시골
가산 이라는 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하루를 산과 들에서 놀다가 전부을 보냈다.
그 곳에선 똑똑하여 영재라 불렸다.
수원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사회 생활도 시흥에 있는 기아자동차에서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시흥 및 안양에서 전세를 얻어 살다가
1988년에 회사의 주재원으로
일본 동경에서 5년 반을 가족과 함께 살았다.
아이들과 아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많은 고생을 했지만, 우리 가족에게
좋은 기억과 추억도 만들어 주었다.
아내는 그 때가 제일 행복했던 시기였다고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2, 3학년때
한국으로 돌아와 적응하느라
또 한번의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잘 적응하고, 우리 가족은
의왕 이라는 곳에 아파트도 장만하고
나름대로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다.
1999년 IMF와 나의 자존심에 의해
회사를 사직하고
6개월뒤 중소기업의 연구소장으로
일하면서 생활했다.
동료들의 캐나다 이민 열풍과
아이들의 학교 진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캐나다에서 살아보자는
선택과 결정을 하게 된다.
그리고 2002년 5월 17일
우리는 캐나다 토론토에 랜딩했다.
아이들은 학교 생활에 적응하느라
나와 아내는 삶을 꾸려 나가느라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평범하지 않은 우리의 선택은
우리 각자의 인생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탐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혹시나 초기에 적응이 너무 힘들면
다시 원위치 하려고
아이들과 엄마는 캐나다에
나는 한국에서 다니던 회사를 다니며
기러기 아빠, 엄마의 생활을 했다.
아내의 용기와 인내 덕분에
캐나다의 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나도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캐나다에 도착했다.
연고도 없는 낯선 땅에서
우리는 각자 최선을 다했고
어려움이 닥치면
새로운 최선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올바르도록 노력했다.
그런 세월이 21년
어느 새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두명씩 낳아
그들의 가정을 점점 환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우리 부부도 은퇴하여
그들이 필요할 때,손주들도 봐주면서
여유로운 노후의 삶을 살고 있다.
되돌아 보면
운 좋고, 감사하고
커다란 시련 없이 살아온
평탄한 삶이었다.
앞으로도
가족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며
사랑으로 가득 찬
그리고 혹시
어떤 어려움과 시련이 오더라도
서로를 위로하며
이 세상을 슬기롭게 헤쳐 나아갔으면 한다
아 !!! 나는 지금.
모든 것이
고맙고, 감사하다.
May 17 2023. Donsoo Han, sea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