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님의 하루
아흔다섯 해를 살아오신 아버님
밤 아홉 시면 깊은 잠에 들고
새벽 다섯 시, 누구보다 먼저
잠자리 정돈하고 하루를 여십니다.
하루의 시작은
과일 한 조각의 상큼함과
차가운 물에 손을 씻는 맑은 의식
일곱 시, 조용히 앉아 아침을 드십니다.
여덟 시 반, 보호사가 오고
월요일과 금요일엔
목욕의 물소리가 고요를 채우고
열한 시 반이면
누나와 차를 타고 식당으로 향하십니다.
어디로 갈지는 아버님이 정하시고
지갑은 언제나 당신 손에
현금 몇 장 꺼내는 동작마저
아직은 스스로이고 싶으신 마음입니다.
식사 후 돌아오면 오후 한 시
누나는 떠나고, 아버님은 혼자
TV 소리 사이로 눈을 붙이거나
화투 한 장 뽑으며 오늘의 운을 보십니다.
간식은 네 시 반,
저녁 여섯 시엔 다시 식탁 앞에
일곱 시 반, 누나는 돌아가고
남은 시간엔 고요가 머뭅니다.
그리고 아홉 시
다시 이불 속으로 하루를 접으십니다.
그러나
2024년 오월, 아프신 다리
병원 한 달의 시간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제는 바퀴 달린 친구의 도움을 받아
집 안을 돌아다니시고
밤이면 소변통을 곁에 두어야
마음이 놓이십니다.
2025년 1월의 어느 저녁
맥주 한 잔의 따뜻한 기운 속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셨나요?"
질문에 담긴 마음을 아버님은 들으셨습니다.
“술 마시고 아무 생각 없이 잘 때.”
그리고
“땀이 나도록 운동하던 그 시간.”
이해하려 했습니다
아버님의 답을, 그 속의 마음을.
지금은 술도 줄여야 하고
걸음도 조심스러우니
그 모든 것이 가능했던 때가
아버님께는 행복이었구나—
시간은 앞을 향해 흐르지만
마음은 언제나
지금의 나를 중심으로 돌고
기억은 그때의 나를 다시 쓰지요.
행복이란
언제나 현재를 살아내는
그 순간의 느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하루를 살아낸 아버님
그 조용한 일상이
가장 단단한 사랑으로 남습니다.
— 2025년 6월 3일
Donsoo Han, sea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