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님의 아흔다섯 겨울, 강화도에서
– 2025년 1월 어느 날, Donsoo Han
2025년이 밝았다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고
한 살 더 얹힌다
아버님은 아흔다섯
느릿한 걸음속에도
살아온 세월의 깊이가 있다
작년 겨울,
우리 다섯은 여행을 약속했다
누나, 우리 부부, 남동생
그리고 아버님
감기 기운 속에서도
함께라는 이유 하나로
강화도 전등사로 향했다
전등사의 찬 바람은 매서웠고
우리는 찻집에 모여
차 한잔에 체온을 나눴다
비빔밥 집 된장국 속 구수한 삶은
어느 식당보다 깊었다
평화전망대,
북녘 땅 바라보며
칠십년의 시간
한민족의 단절된 마음위로
"아직도”라는 한숨이
우리 모두의 가슴에서 흘러나왔다
감기 기운 탓에
준비한 회가 많이 남았고
다음날 우리는
회덮밥과 매운탕으로 하루를 열었다
교동도의 망향대에 서서
눈 앞의 가지 못하는 북한땅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보문사로 가는 길
차가운 바람에
아버님은 차안에 머무르시고
우린 마애불까지 올랐다
수많은 계단을 딛고
눈 앞에 펼쳐진 풍광에 숨을 멈춘다
마애불 앞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소원을 빌고
돌 계단을 내려왔다
석모도의 칼바람,
차 안에서 아버님은 창밖을 바라보셨다
차마 말하지 못한 지난 날의 기억들을
그 바람에 실려 보내셨으리라
카페 ‘스페인 정원’
바다를 품은 창가에서
차와 함께 따뜻한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저녁은 다시 비빔밥
아버님이 원하셨던 그 맛
우리는 익숙함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되새겼다
다음 날 아침
밝은 아버님의 얼굴
누나의 웃음
그리고 우리의 안도
애기봉 평화 생태공원,
스타벅스 창 넘어 임진강 건너편의
북한 땅 을보며
마음은 무거웠다
강 바람은 살을 에었고
침묵은 더 깊어졌다
체감 온도 영하 오십
이산가족의 마음도 그만큼 차가웠으리라
사진 한 장 부탁하기 조심스러운 세상
웃으며 응해준 낯선 아랍인에게
우린 작은 따스함을 느꼈다
마지막 길, 수원의 식당에서
아버님이 사 주신 삼계탕 한 그릇
속 깊이 퍼지는 따뜻함 속에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안고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감기, 고단함, 추위 속에서도
우린 함께였다
여행이란 결국,
누가와 떠났는가를 기억하는 일
나는 사우나에서
마지막 날을 씻으며 생각한다
건강해야,
다시 떠날 수 있다는 걸
다음엔 더 따뜻한 계절에
더 건강한 모습으로
또 아버님과
우리 가족이 함께 걷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