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능과 삶 사이에서
- June 15 2025. Donsoo Han, Seamind
시작하면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였으나
이제는 자연에서 멀어진 문명의 틈바구니에서
본능을 잃고 이성을 배웠다.
우리는 자유롭다고 말하면서
그 자유가 주는 외로움에 흔들리고,
선택의 시대라 하면서도
사실은 선택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간다.
이 5편의 시는
그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고백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의 기록이다.
1. 본능의 유배지에서
한때
배고프면 먹고
사랑하면 껴안고
두려우면 도망치던
그 단순한 진실만으로도
우리는 살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사는 법은 배워야 하고
사랑은 계산되어야 하며
두려움은 견뎌내는 미덕이 되었다
우리는 본능을 부끄러워하고
제도를 찬양한다
정책이 아이를 낳게 하고
임대료가 결혼을 막는다
'선택'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포기를 포장하고
'자유'라는 외투 속에
고립을 숨긴다
혼자가 편한 건지
함께가 두려운 건지
그조차 구별하지 못한 채
오늘의 젊은이들은
치열하게, 조용히 무너진다
삶은 자연이었으나
이제는 생존이 되었다
본능은 잊혔고
그 빈자리를
문명이라는 괴변이 채운다
그래도 우리는
이 허위와 혼돈 속에서
작은 진실을 찾으며,
희망을 지키고
다시 살아가야 한다.
2. 치열한 낮, 조용한 무너짐
이력서를 열두 번 고치고
웃는 사진 하나를 뽑아 붙이고
카페에서 연한 라떼 하나를 마시며
그 속에 넣은 우유보다 더 연한 꿈을 마신다
퇴근길, 버스 창에 비친 얼굴은
어느 순간부터 나이 아닌 숫자가 되었고
‘가능성’은 늘
상대편 이력서에 적혀 있는 단어였다
사랑도, 결혼도
메신저 이모티콘처럼
너무 빠르거나 너무 가볍거나
아예 전송되지 않았다
우리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꺼져가는 중이었다
들키지 않게
괜찮은 척, 어른인 척
그렇게 하루를 접었다
3. 결혼이란
어릴 땐 결혼이
빨간 리본 달린 상자 같았다
열면 사랑이 있고
아이가 자라고
노인이 되어도 함께 앉아
국을 데우는 풍경
그런데 커보니
결혼은
대출금과 청약 점수,
양가의 사회적 스펙,
싱크대 밑 곰팡이까지 고려한 계약
사랑은 남았을까
아니,
사라졌을까
우리도 누군가를 사랑한 적 있었다
함께 살 집을 그리기 전에
먼저 손을 잡았고
말 없이 울어도
그 품에 들어가면 모든 게 괜찮던 시절
지금 우리는 묻는다
결혼은
삶을 함께하는 일일까
아니면
혼자라는 걸
덜 두려워하기 위한
방어막일까
4. 자기합리화, 척
이 도시는
누구나 자유롭고
누구나 외롭다
혼자인 게 멋진 거라 배웠다
타인의 시선을 벗어나
자신을 사랑하라고,
고요한 방에서 스스로를 달래며
외로움마저 '취향'이라 했다
꿈을 이루라 했다
낮에는 명상, 밤에는 콘텐츠,
새벽에는 외국어 공부와 헬스,
“나를 위한 삶”이라는 문장 아래
모두가 기계처럼 ‘업데이트’되었다
그러나
정작 누가 우는지
누가 울고 싶은지도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자유롭다고 외치며
선택할 수 없었던 삶을
애써 사랑하는 척
괜찮은 척
아주 능숙하게,
스스로를 속인다
5. 그래도 희망은
그래도
꽃은 피고
봄은 오고
누군가는 손을 내민다
결혼하지 않아도
혼자 살아도
삶은 여전히
다정한 구석을 남겨두었다
주말 아침,
빵 굽는 냄새와
계단을 내려오는 이웃 아이의 웃음,
문득 도착한 친구의 안부 문자
우리는 아주 작게
아주 희미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공유한다
때로는 그게 전부다
그리고,
그 전부가
살아가기에 충분하다
마침의 말
이 시들은 거창한 철학도 아니고, 눈물겨운 삶도 아니다.
다만 지금 여기, 우리가 처한 이 시대의 숨소리를 글로 옮긴 것이다.
만약 이 시 한 편이 당신의 마음에 잠시라도 머물렀다면,
우리 모두는
조금은 덜 외롭다는 증거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