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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언덕에서 (시)

한돈수 2025. 6. 18. 19:44





시간의 언덕에서

   - June 17 2025. Donsoo Han,  Seamind


2002년 봄,
토론토 땅을 밟았지만
부모님의 품을 떠난 건
2004년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그때 부모님은
배드민턴 셔틀콕을 힘차게 날리셨고,
신문을 펼치며 세상과 대화를 나누셨고,
약수터에서 20리터의 정성을 기러오셨다.
게이트볼,
수원시 대표의 자부심이셨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님이 누나에게
신문을 끊겠다고 하셨단다.

“눈이 나빠져서, 읽을 수가 없구나…”
그 말에 스미는 서글픔이
겨울비처럼 조용히 흘렀다.

고도리 게임도 이젠 끝.
컴퓨터 화면 속 즐거움도
이젠 손끝에서 멀어지고,

게이트볼,
매주 화요일, 금요일
두 번의 웃음과 점심 자리도
조용히 문을 닫았다.

열정은 사라진 게 아니라
시간 속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간 것이다.

무엇을 내려놓는다는 건
슬픔만은 아니다.
지나온 길을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다.

나도 언젠가
이 무엇들을
하나씩, 하나씩 놓아야 하리라.
그때 나는
화를 내지 않고,
허망해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유유히 살아갈 수 있을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우리 모두는
하루의 순간을 차곡차곡
살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