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일주기를 보내기 위해 한국에 한달반 가량 다녀온지 일주일 째다.
지금 시간은 3시 50분.
어제 밤 11시에 잠자리에 들어 2시 반경 화장실에 다녀 온 뒤 한참을 뒤척이다 일어났다.
창밖으로 보이는 베이 스트릿의 금융가 빌딩들이 조용한 불빛을 머금은 채 밤 하늘에 기대어 서 있다.
고요함만이 흐르는 도시의 한 가운데서 조그만 탁상용 스탠드 불빛 밑에 나를 두고 앉아 생각에 잠긴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시차적응은 나의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단지 아들네 둘째 딸의 출산으로 한국에 함께 가지 못한 집 사람의 수면에 방해가 될까 염려가 될 뿐이다.
전에도 몇번 한국에 다녀 온 적이 있다.
그 때는 대개 2주간의 여행이었고, 다녀 오자 마자 새벽 4시에 일어나 일을 해야하는 것에 내 자신을 묶어 놓았기에 시차적응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단지 오후에 밀려오는 잠을 주체할 수 없어 낮잠을 잤을 뿐이다.
작년에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거의 3개월간 한국에 다녀 왔었다. 그 때는 집 사람과 함께여서 도착해서도 함께했고, 비지니스도 하지 않는 상태여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 즐기며 시차적응을 시간의 흐름에 맡겼던 것 같다.
오늘 생각해보니 시차적응이란
생리적 현상은 사람의 정신, 마음갖임에 따라 어느 정도 많이 제어가 가능한 것이고, 생활이 여유롭고 시간의 제약이 거의 없으면 생체의 리듬에 따라 자고 먹고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적응이 되는 일인 것이다.
지금, 새벽녘에 고요한 도시의 한 복판에서 이렇게 일어나 시차적응에 대해 생각하고 적어보고 있는 나, 이 또한 시차적응 때문이다.
모든 것에 검사하는 삶은 건강하고 맑다.
Dec. 21. 2021. (Tuesday)
Donsoo Han, sea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