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정아에게

한돈수 2021. 3. 22. 00:59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난건 1983년.
사원 교육을 마치고 동기 몇명이랑 간
미팅에서 였다.
남자는 각자 갖고있던 소지품중 한개씩을 자신의 증표로 내었다.
난 내가 사무실에서 쓰던 샤프펜설을 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자들에게 갖고가서 여자들은 남자들이 낸 소지품중에서 하나씩을 골랐다.
그녀는 내 샤프펜설을 골랐고 나는
그녀의 파트너가 되었다.
이렇게 우연아닌 필연으로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내가 그리던
여성의 모든것을 갖춘...
큰 키에 곧은 자세, 적당히 기른 머리, 미소띤 하얀얼굴, 웃을 때의 환한 청순함, 해맑음......
그냥 첫눈에 반해 버렸다.
그녀의 이름은 정혜순, 그녀의 모습에 약간 어울리지 않게 조금은 촌스러움이 있어 난 정아라고 부르고 싶다고
그녀의 동의를 얻었다.
그후로 지금까지 난 그녀를 정아라고 부른다. 내 폰엔 My 정아라고 저장되어 있다.

1년여의 사랑을 키우는 만남후에
우린 평생을 함께 하기로 했다.
난 정아에게 모든것을 주고 싶었고,
정아가 주면 무었이든 받아 줄수있는 그런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밤새 관광버스를 타고 가서 깜깜한
새녁에 오른 월출산,
동해로 가는 기차를 타고 가다 내려
어느 산자락에서 흰눈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던 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삼풍농원에서
친구들과 밤을 지새며 노래부르던
일,
춘천의 막국수가 그리워 몇번은 갔었나....
소양강댐에서 출발해 양구까지 배로,
차로 도보로 백담사까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백담사에서 하루 자고,
설악산을 넘어 동학사로.... 이때 난 정아의 끈기와 인내심을 보았지.
그리고 파란 바다와 백사장 그리고
젊음의 열기가 넘첬던 송지호 해수욕장....
생각해보니 결혼전 우리의 만남에 많은 추억이 있었네.

온양온천 약혼여행
제주도 신혼여행... 기사 아저씨가 눈이 나빠 촛점맞은 사진이 거의 없어
기억만이 기록물인 안타까움이 있었오.
.
혜진, 상빈의 출생.
정아의 육아시절....헌신과 의지 그 자체였지.
시흥의 반지하 그리고 불편한 계단이 있었던 2층방 전세. 혜진이와 함께 했던 곳.
안양의 진흥아파트 전세는 그래도 좀 괜찮은 편이었지. 상빈, 혜진 둘이라서 좀 더 정성을 들여야 했지만...

1988년 10월
일본 동경연구소로 발령받은후
동경생활의 시작.
한달 먼저동경에 가서 가족과 함께할 집도 찿고 주위 환경도 익히고..
당신과 혜진, 상빈이 드디어 동경에 도착했던 날, 그날밤 상빈이가 밤 새도록 울고
보채서 새벽에 츠끼지에 있는 병원의 응급실에 갔었는데 병원에 도착하자 너무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잘 놀아서 다시 돌아 왔던일, 그날 참 당황했었는데...
그렇게 시작했던 도요쬬에서의 동경 생활도 당신 덕분에 주위의 사람들과 참 친하고 즐겁게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드오.
특히 당신 친구 영희씨의 도움은 매우 큰 은혜였지.

1994년
한국에 돌아와 시작한 우리의 정착기.
아이들은 3달간의 학원에서의 한글 공부로 초등학교 2, 3학년에 들어 갔지. 일본에서 유아원, 유치원, 소학교 1,2학년을 마치고 바로 한국의 초등학교에 간거지.
상빈이는 말이 잘 안통하니까 자기가 잘 하는 게임으로 친구들을 모으고 사귀어 나갔지. 그래도 힘들었겠지만 잘 적응해주었어.
혜진이 고등학교 1년, 상빈이 중학교 3년 마치고 우리 가족은 또 한번의 커다란 결정을 했지.
의왕 저수지 인근의 카페에서 식사하면서 캐나다로의 이민을 예기했지. 모두가 두려움도 있었겠지만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새로운 곳에서의 삶을 살기로 했지.

2002년 5월 17일.
우리는 캐나다 토론토에 랜딩했지.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당신과 아이들은 여기서 살고, 난 당분간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더 하기로 하고, 2주간의 휴가를 얻어 토론토에 랜딩한거지.
5월인데도 춥고 으시시한 날씨, 한국의 면소재지를 연상케하는 핀치의 거리는 새로운 곳에서의 낯설음을 더 크게 했었지.
바쁜 2주간, 정착써비스를 해주신 김 익수씨 덕분에 겨우 에글링턴/베더스트부근의 아파트를 얻어 선박으로 먼저 보낸 이사짐도 옮기고 어수선한 아파트를 뒤로 한채 난 한국으로 돌아 갔었지.
혼자서 매우 힘들었을텐데 아이들 학교도 보내고 새로운 곳에서 적응도 하고...
당신은 참 지혜롭고 강인한 여자인 것 같아. 옛날 아프리카를 개척해나가던 유럽의 여인들 처럼....
아이들도 힘들었겠지만 잘 참고 현명하게 하나 하나 적응해줘서 정말 고맙고.

2004년 2월
나도 한국의 생활을 정리하고 토론토에 합류하다.
먼저온 지인들을 방문하며 이야기도 듣고 나름대로의 생각도 정리한 끝에 어렵게 시작한 프렌차이즈 The Bagel Stop Yonge Eglinton Center. (from Apr.11.2005)
이때부터 아내와 난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며 캐나다 토론토에서의 삶을 하나 하나 이룩해나갔다.

2020년 4월 30일
토론토에서 만 15년을 운영하던 The Bagel Stop 을 그만두고 꿈에 그리던 은퇴를 했다.
지금부터의 삶은 당신과 나에게 인생에서 제일 즐겁고 여유로운 시간들이 될 것이다.

2020년 8월 21일
당신의 새롭게 시작하는 첫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점점 더 즐겁고 멋진 삶을 당신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흐린 밤 하늘에서도 여기 저기 반짝이며 즐거움을 주는 별들 처럼 우리도 이곳에서 빛 발하며 아름답게 살아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