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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과 배구 경기를 보다. (2022)

한돈수 2023. 1. 7. 17:16

아버님은 티비를 보시면 언제나 프로여자배구를 보신다. 남자배구는 너무 힘 세게 해서 렐리가 지속되지 않고 빨리 끝나 재미가 없다고 하신다.
다음으로 잘 보시는 것은 농구다. 여자, 남자 가리지 않고 보신다.
시력과 청력이 나빠지셔서 보셨던 기억으로 어렴풋이 유추하면서 보셔서, 라이브 방송에 이어 다시하는 재방송도 계속 보신다.

여자배구팀 중 수원에 연고를 둔 현대건설의 팬이시다. 그래서 수원 실내 체육관에서 열리는 배구 게임을 보러 가자고 제안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하셨다. 우리는 서둘러 티켓을 예매했다. 평일 날은 저녁 7시에 시작하여 너무 늦고, 주말에는 오후 4시에 시작하기에 시간대도 좋아서 경기 일정을 보고, 11월 20일 일요일 오후 4시에 시적하는 현대건설 대 IBK 기업은행의 경기 티켓을 선택했다.

20일 동생 대수는 갑자기 일이 생겨 함께하지 못하고 우리 부부, 누님, 아버님 넷이서 코다리 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만석공원을 한 바퀴 돌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오후 3시에 집을 나와 경기장으로 향했다.
수원실내체육관으로 들어가는 길을 확실히 몰라 조금 헤메았지만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수원공설운동장과 수원 야구장 사이에 수원실내체육관이 있었다. 이 사실을 몰랐기에 약간의 혼동이 있었던 것이다.

주차장이 많이 차있었기에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휠체어로 아버님과 함께 움직였다.
우리의 좌석은 S-1구역 6열 9~12번 까지 였다. 경기장 안내 스텝의 도움으로 S-1구역까지 와보니 좌석이 6열의 1번에서 20번까지 있는데 거의 중앙이었다. 아버님이 이동하시는 것이 너무 힘들게 보여, 안내원의 도움으로 장애인 구역에서 보는 것으로 했다.

티켓 파는 곳에 가면 좌석을 바꿔 준다고하여 갔더니, 우리가 산 좌석이 비싼 표인데 왜 바꾸려고 하냐고 물었다. 아버님이 불편하셔 바꾸려고 한다고 말하자 메니저에게 물어 본다고 하였다. 메니저는 한 좌석만 바꿔주는 것이 가능하며, 아버님과 함께 보기위해 한 좌석 더 바꿔 줄 수 없냐고 하니까 10000원을 더 내야 한다고 했다. 왜냐고 하니까 우리가 티켓을 잘 못 샀고 지금은 경기 시작 바로 전이니 티켓을 반환할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럼 한 자리만 바꿔달라고 하니까 휠체어를 타고 여기로 와서 보여 주어야만 바꿔줄 수 있단다. 어이가 하늘 만큼 없고, 이런 애들이 요즘 애들 이구나 싶었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차분히 지금 다시 이곳에 오는 것은 힘드니 수고스럽지만 당신이 가서 확인하면 안돼느냐고 했더니, 자기가 많은 희생을 하는 것처럼 티켓을 하나 끊어, 가자고 하였다. 아버님 계신 곳에 가서 확인후 티켓을 주곤 가 버렸다.

오래간만에 한국의 젊은 사람들과 일을 처리하다보니 옛날의 친절함에 기본한 서비스 정신은 사라지고, 한국의 정에의한 관리 및 사회 시스템도 증발해버린 감이 들었다.

모처럼의 아버님과의 배구경기 관람임을 깨닫고, 한 젊은 여자 메니저의 불친절에 내 기분이 상해서는 않된다는 생각이 들어, 모두 잊어버리고 새롭게 경험하는 배구경기 관람이라는 현재의 순간에 몰입했다.

우리에게 배구 경기는 재미있었으나 시력이 좋지않은 아버님은 또렸이 보이지 않아, 한참 보시다가 야스민은 나왔냐 하며 물으셨다. 아이고 아버님은 이 거리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잘 보이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응원 소리가 너무 커서, 보청기에 의존하시는 아버님은 혼합된 소리에 정신이 없으신 것 같았다.

하지만 92세에 새로운 경험을 하신 아버님이 존경스럽다. 어찌보면 하고 싶은 욕망이 없울 수도 있는데, 건강하게 참여해주신 아버님께 감사드린다.

경기는 여자배구 무패로 선두를 달리는 현대건설이 3대0으로 이겨, 한시간 반만에 끝났다.

경기가 끝나고 길림성이라는 중국음식점에 가서 짜장면을 먹으면서, 아버님께서 티비로 보는 것이 더 잘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인생의 모든 것은 순간이고, 그 순간들이 지나가 버리면 이런 저런 사유로 그 순간을 다시 하기가 어려워진다.
지금부터라도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November 20 2022. Donsoo Han, sea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