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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틈에 핀 노란 꽃의 말 (시)

바위틈에 핀 노란 꽃의 말 - June 24. 2025. Donsoo Han, Seamind 조지안 베이 호숫가 바위틈에 핀노란 생명 하나,조용히 피어나조용히 사라진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누가 이름 불러주지 않아도그저 바람과 햇살에 몸을 맡긴 채자기만의 시간을 살아낸다. 들녘에도, 연못 가장자리에도,산등성이 돌무더기에도,길가 먼지 속에도 꽃들은 핀다. 서로 다르되 비교하지 않고크고 작되 다투지 않는다.그저 주어진 자리에 뿌리 내리고피고, 지고, 사라진다. 행복도, 슬픔도, 원한도 없이우주의 리듬에 실려자연의 질서 속으로 스며든다. 그것이 곧자연과 하나된 삶.억지로 가지 않고되돌아오려 하지 않는 삶. 그러니 우리 인간도,이 넓은 생명의 무리 속에서군림만 하려 들지 말고보살피고, 나누며고요히 살아갈 일..

카테고리 없음 2025.06.26

낯선 이의 따뜻한 헤어 컷 (시)

낯선 이의 따뜻한 헤어 컷 - June 25 2025. Donsoo Han, Seamind 전기가 나간 아침이었다.식사를 마치고운동 삼아 공원으로 나섰다. 가볍게 체조를 하고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어느 노인이 다가왔다.중국계 할머니였다. 말은 통하지 않았다.그녀는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며“컷트, 파이브 달러”웃으며 손짓했다. 머리를 기르던 중이었지만어쩐지 그날은 잘라보고 싶었다.20년 넘게 해왔다고 했다.매일 아침 이곳에 온다고 했다. 돈이 없다고 말하자그녀는 상관없다며“나중에 줘요. 지금 괜찮아요.” 벤치에 앉아나는 머리를 맡겼고그녀는 익숙한 손으로조용히 가위를 놀렸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더니젊어 보인다고 웃었다.“당신의 도전, 멋져요.” 다음 날약속을 지키려공원으로 나갔지만그녀는 보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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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짐의 질서, 순환의 무도회 (시)

사라짐의 질서, 순환의 무도회 우리가 한데서죽음을 맞는 그 순간,세계는 조용히다른 리듬으로 전환된다. 이제 말 없는 무대에첫 배우가 등장한다.청파리,날이 선 광채를 머금은 채아직 따뜻한 살 위로 내려앉는다.살점을 먹고, 흔적을 남기며그들은 시작을 알린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금팔이가 도착한다.조금 부패한 살을 선호하는 이들은더디지만, 더 정직한 동작으로육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쉬파리,그 뒤를 잇는 자들.소리 없는 손짓으로남은 틈을 메우고자연이 요구하는 완결을 향해작업을 계속한다. 무거운 존재들이 등장한다.검은 수시렁이와 비계 수시렁이,딱정벌레목의 고요한 기술자들은육체의 폐허 위를느릿한 발걸음으로 가로지르며남김없이, 집요하게청소를 시작한다. 그다음은 치즈파리,기묘한 취향의 식객들.그들이 도착하면이미 몸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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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너머의 나 (시)

물질 너머의 나 나는 하나의 화학적 구조물,그러나 단순한 조합이 아니다.분자와 분자 사이,그 미세한 틈에존재의 의문이 머문다. 탄소가 숨을 쉬고,수소가 속삭이는 몸—나는 정교한 배합의 산물,균형과 긴장 사이에 서 있다. 내 안에는 또 다른 차원,분자 아래 원자,원자 아래 쿼크,그보다 더 작은,텅 빈 진공과 떨림들. 나는 비어 있으면서가득 차 있다.전자기적 인력 속에나는 붙들려 있으나,그 누구도 나를 붙들 수 없다. 물질은 나의 껍질이고,의식은 그 너머에서끊임없이 스스로를 묻는다. 나는 어떻게 존재하는가.나는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나는—물질 너머의,설명되지 않는 하나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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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히 사라지는 가능성들 (시)

고요히 사라지는 가능성들 - February 2024. Donsoo Han, Seamind 우리가 딛고 있는 이 현실이과연 단 하나의 세계일까.보이지 않는 시간의 이면엔또 다른 내가, 다른 우리가다른 길 위를 걷고 있을지 모른다. 이 순간조차수많은 갈래의 문이 열리고우리는 그 중 단 하나의 문턱을무심히, 혹은 간절히 지나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문은 닫히고, 길은 굳어지고‘현실’이라는 이름 아래다른 가능성들은소리 없이 증발해버린다. 선택된 한 줄기의 시간은굳건해지고, 굳어질수록다시 무수한 가지를 낳는다.그리고 그 끝마다또다시 조용히 사라지는수많은 나와 우리의 그림자들. 우리는 언제나사라진 가능성 위에 서 있다.지금 여기가 단 하나의 진실처럼빛나고 있을 뿐. 그러나 어쩌면,그 고요한 사라짐들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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