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12

어머님을 위한 추모시 (시)

어머님을 위한 추모시 엄마, 그 이름의 시간들 - July 05 2025. Donsoo Han, Seamind 1. 콩 한 줌의 사랑 콩을 유난히 좋아하던 나에게형제들 몰래밥 사발 밑에 콩을 더 넣어주던 어머니 나는 그걸 몰랐다그냥 밥을 퍼 올릴 때마다콩이 많아 기뻤다 나중에서야 알았다그 콩은 맛이 아니라사랑이었다는 것을 아무 말 없이, 아무 티도 없이나 하나 더 챙겨주던 마음 지금도 콩밥을 보면어머니 손길이 떠오르고 그 손길은 밥보다 따뜻하고말보다 깊었다2. 왼손 세번째 손가락의 기억 초등학교 3학년 무렵,논에서 낫질하다가왼쪽 가운데 손가락을 베었다 뼈가 보일 정도였지만나는 말하지 않았다종이로 싸고, 오른손으로 감쌌다 그날 나는 고통보다조용히 견디는 법을 배웠고 나중에 어머니가 알아채셨다그 후로 ..

카테고리 없음 2025.07.08

시간을 담은 책상 (시)

시간을 담은 책상 - July 04 2025. Donsoo Han, Seamind 도쿄의 낯선 집,작은 손들이 웃음을 흘리던1989년의 봄날,우리는 두 개의 책상과하나의 2층 침대를 들였다. 딸과 아들,서툰 글씨, 크레용 자국,잠결의 숨소리와 낮잠의 햇살까지그 위에서 자라고, 흘러갔다. 세월은 멈추지 않아서울을 지나,다시 바다 건너 캐나다로.짐 속엔 많은 걸 버렸지만그 가구들은 함께 왔다. 2층 침대는 나뉘어오랜 세월, 아이들의 잠을 지켰고딸이 시집가자 하나를 보냈고아들이 떠난 뒤 남은 하나는락커 속에서 조용히 숨을 쉬었다. 1년 반 전,그 침대도 작별했다.오랜 벗 하나가 떠나듯묵묵히, 조용히, 아주 가볍게. 하지만 책상 하나는 남아지금도 내 곁에 있다.아들이 쓰던 그 책상.이젠 내가 하루를..

카테고리 없음 2025.07.05

좋은 만남 (시)

좋은 만남 - June 26 2025. Donsoo Han, Seamind 좋은 만남은기다림 속에 설렘이 깃드는 것,아직 오지 않은 순간에도미소를 짓게 하는 인연이다. 문득 떠오르면기억 저편에아련한 웃음이 피어오르고,긴 시간 만나지 못해도마주 앉는 그 순간,아무 일도 없던 듯편안해지는 사이. 말이 없어도침묵이 어색하지 않고,눈빛 하나로 마음을 나누는—그런 우정이 있다.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마음은 언제나 가까이 있고,시간이 흘러도변하지 않는 따뜻함이그 만남을 지켜준다. 그리움은 부담이 아니고,기억은 슬픔이 아니라지금도 살아 있는 인사처럼마음속에 조용히 머무른다. 그 만남의 상대는,누구든 간에내 안에 남아한 줄기 바람이 되어 지나가고,가끔은 햇살처럼나를 웃게 한다. 좋은 만남이란오래 머무는 것이 아니라..

카테고리 없음 2025.06.27

사랑, 그 순환의 노래 (시)

사랑, 그 순환의 노래 - June 19 2025. Donsoo Han, Seamind 사랑이란 무엇인가묻고 또 물어본다그것은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함께 걸어온 시간의 자취,살아온 이야기 속에 숨어 있다 처음엔 설렘이었다아이의 탄생과작은 손을 잡고 걷던 날들잠 못 이루던 밤도,어설픈 웃음과 울음도모두 사랑이었다 그 사랑은 내 삶의 가장 큰 이유였고자녀의 삶을 돌보며나는 나를 지웠지만,그 지움이 오히려 나를더 깊이 있게 만들어갔다 이제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또 다른 생명을 품는다그 손길을 보며나는 알게 되었다사랑은 다시 돌아오는 것이라는 걸 받았던 만큼 주고주었던 만큼 다시 받는이 세상의 고요한 윤회처럼사랑은 그렇게 흐른다 이제 나는 손주를 바라보며지나간 날들을 되새긴다그땐 몰랐던 아픔,미처 느끼..

카테고리 없음 2025.06.19

이상적인 삶이란 (시)

이상적인 삶이란 - June 18 2025. Donsoo Han, Seamind 태어나 눈을 떴을 때이 세상은 이미 존재했고살아가는 동안에도그 세상은 묵묵히 흐르고 있었으며내가 떠난 뒤에도그 세상은 조용히, 그러나 여전히 흘러가리라. 나는 그 안에서배우고, 일하고, 사랑하고자식을 낳고, 기르고,한없이 달려왔다. 그 순간순간의 선택들,그땐 그것이 최선이라 믿었지.그러나 지금 돌아보면그 선택들 가운데가장 중심에 있어야 했던 건가족이 아니었을까,그 소중함을 뒤늦게 묻는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길을 걷는다.어떤 이는 명예를 좇고,어떤 이는 부를,어떤 이는 꿈을 위해 떠났지만, 세월이 지나고인생의 후반부에 다다르면다시 모이는 그 자리엔비슷한 바람만이 남는다. 손주들과 놀이터에서숨바꼭질을 하며 함께 웃..

카테고리 없음 2025.06.19

죽음에 대하여 (시)

죽음에 대하여 - June 17 2025. Donsoo Han, Seamind 죽음에는 종류가 있다 나의 죽음 — 고요히 닫히는 마지막 문너의 죽음 — 가슴 깊은 곳에 남는 떨림그들의 죽음 — 신문 한 귀퉁이 잊혀진 이름우리의 죽음 — 함께 지은 시간의 집이 무너지는 소리 죽음은 단지 끝이 아니다삶이 남긴 자취, 그 무게를 되묻는 시작이다 동물의 죽음은대개 희생이라 불린다입을 닫은 채, 소리 없이우리의 필요 아래 쓰러진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자신의 수명대로 조용히 살아내고아무도 모르게숲속 어딘가, 그림자진 구석에몸을 눕히고,세상과 작별한다 울지 않고, 외치지 않고자기 생의 끝을홀로 받아들이는 그 고요함그것은 우리 인간이 배워야 할가장 깊은 존엄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죽음도그렇기에 희생이기를탐욕의 ..

카테고리 없음 2025.06.18

설날 밤, 윷놀이의 기억 (시)

설날 밤, 윷놀이의 기억 - January someday 2025. Donsoo Han, Seamind 까치 울던 설날 이브작은 방 안,아버님, 아내, 그리고 나세 사람이 둥글게 앉아조용히 윷놀이를 시작했다. 윷살은 쿵,바닥을 두드리며 시간을 흔들고마가 잡히면아쉬움이 눈빛에 번졌다가또 누군가의 웃음으로 녹아내렸다. 내 마가 상대 마를 잡을 때아버님의 얼굴엔 환한 기쁨이 피어나고아내는 깔깔 웃으며 두 손을 모은다.그 웃음소리에설날 저녁의 정이 방 안 가득 퍼진다. 아흔다섯 해를 살아오신 아버님,그 손에 들린 윷짝은언젠가 어린 날내게 처음으로 가르쳐 주셨던 그것. 이기고 지는 건 아무래도 좋았다.말이 움직일 때마다우리는 시간을 딛고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인생이란,이렇게 잠시 머물다 가는한 판의 윷놀이..

카테고리 없음 2025.06.18

나이아가라, 우리를 닮은 물결 (시)

나이아가라, 우리를 닮은 물길 - Donsoo Han, Seamind 2025년 5월 31일,흐린 하늘 아래검푸른 나이아가라강은묵묵히 흐르고 있었다.초록빛으로 떨어지며폭포를 지나온타리오 호수로,그리고 언젠가는 대서양으로. “우리, 나중에 이곳에 뿌려지면 어때?”아내의 한마디에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언제나 우리가 앉던커피향 가득한 그 벤치,그곳에서 시작된 여정이면 좋겠다고,조용히 생각했다. 물이 흐르듯,우리도 그렇게서로 다른 방향에서 와한 줄기 강물이 되어오랜 세월을 흘러왔다. 나는 ISTJ,그녀는 INFP.단 하나의 I(내향)만 같고나머지는 모두 달랐다.어쩌면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그럼에도 함께 걷고 웃고아이들을 품으며 살아왔다. 다름은 틈이 아니라,채움이었다.배려로 메우고,이해로 ..

카테고리 없음 2025.06.18

송지호의 추억 (시)

정아에게 – 송지호의 여름 정아,기억나지?우리가 처음으로 단둘이송지호 해수욕장에 갔던 1984년 여름. 뜨겁던 햇살도,바다의 소금기도,네 웃음 앞에선모두 순해지고 투명해졌지. 그때 우리는젊다는 이유만으로모든 게 가능할 거라 믿었고,서로의 눈빛 하나로세상이 충분했지. 모래 위에 앉아너와 바라보던 수평선,그 끝에는우리의 미래가 아른거리고 있었지. 그리고오랜 시간이 흐른 후,2021년 겨울,나는 다시 그 바다를 찾았어. 모래엔 발자국 대신 눈이 쌓였고,파도는 조용히, 조용히그날의 기억을 데려왔지. 나는 그 해변에서젊은 정아와 나를 보았어.쏟아지는 햇살 속에서,마주 웃던 우리를. 여보,그날의 불꽃은시간 속에 묻히지 않았어. 지금도 내 마음 한가운데,그 바다는 출렁이고 있어.젊음은 지나갔어도그 사랑은 여전히따뜻하..

카테고리 없음 2025.06.17

시간의 강을 건너온 나의 인생길 (시)

시간의 강을 건너온 나의 인생길 Donsoo Han, 2025.6.4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 상현리 691번지,작은 산 셋이 감싸 안은,열한 채 집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마을, 가산.그곳에서 나는가재를 잡고, 새알을 찾고,웅덩이 물에 뛰어들어 미역을 감고,참외 수박 서리하며 웃음 짓던 아이였다. 겨울이면 썰매를 타고,기차길까지 십 리를 걸어저 철마를 타고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다.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바라보며울타리의 오디를 따먹고토끼에게 풀을 뜯어다 주던꿈 많은 아이였다. 집 앞 마당 옆의 조그만 샘물에서세수도 하고, 발도 씻고,어머니는 빨래를 하셨다.집 뒤편엔 감나무 다섯 그루,그리고 아버지의 호두나무 하나.그 나무들은 곧 우리 가족이었다.아버지, 어머니, 누나, 동생,그리고 나,막내 여동생은 가장 작고 ..

카테고리 없음 2025.06.10